조용희 청소기
김보라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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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기다렸던 여름방학이다. 주인공 용희는 함께 놀자는 친구들의 권유를 못 본 체하고 집으로 달려간다. 학원을 다녀오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샤워를 하고, 저녁밥을 먹는 등 모든 해야 할 일을 마친 뒤 엄마, 내일은 마음껏 잘게요!”라고 고한 뒤 결연히 잠자리에 들지만, 각종 소음으로 깊이 잠들지 못한다.


 용희의 세상에는 소음이 너무도 많다. 세탁기, 밥솥, 냄비, 주전자, 청소기, 선풍기 등 집안의 갖은 전자제품과 조리기구들에서 나는 소리,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 도로에서 나는 소리, 강아지가 짖는 소리, 그리고 여름을 채우는 매미들의 울음소리까지. 용희는 방학 중 딱 하루만 소음의 방해 없이 푹 자기 위해 소음을 빨아들이는 조용희 청소기를 만들어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소음을 제거하고 마침내 숙면에 성공한다.


 『조용희 청소기는 동양화를 전공한 김보라 작가의 첫 그림책이다. 삽화는 수채화로 표현되어 있는데 붓자국과 물자국이 은은하게 어우러져 맑은 느낌이 난다. 특히 각종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들이 그 소리의 느낌을 글자체로 잘 표현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그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공감각적 효과를 준다. 귀여운 그림체와 은은한 색감이 어우러져 작가만의 특색있는 스타일을 표현하고 있다.

 

 용희는 모범생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초등학생들과 달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해낸다. 학원도 잘 다니고, 스스로 공부도 잘하고, 과학과 만들기를 잘해 상도 여럿 수상하였다. 청각이 예민한 아이이지만 예민한 아이 특유의 짜증이나 불평불만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기발한 방법으로 극복해나간다.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이른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같은 아이이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용희가 짠하다. ‘딱 하루만 실컷 늦잠 자고 싶다는 용희의 간절한 소망은 초등학생이라기보다는 회사생활에 찌들고 삶에 지친 중년의 가장에게나 어울릴듯한 소망이다. 용희의 소망은 어째서 놀고 싶다가 아니라 푹 자고 싶다가 되었을까? 우리 사회와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은 새로운 매일매일이 즐겁고 설레어야 할 아이들을 학교-학원-숙제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가두어 삶에 찌든 중년처럼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착실하고 성실한 아이일수록 아이다움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방학이 된 용희는 학기 중과는 다르게 친구랑도 놀고 할머니와 바닷가에도 간다. 방학 중 이라는 비일상 속의 용희는 학기 중 보다는 비교적 즐겁고 활기차 보인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된다면, 그 전 보다는 용희의 일상 속에 틈틈이 다름과 새로움, 또 즐거움이 자리할 여유가 생기길 옆집 이모의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딱 하루만 실컷 늦잠 자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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