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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추위 ㅣ 산하작은아이들 71
임순옥 지음, 이상권 그림 / 산하 / 2022년 11월
평점 :
꽃샘추위란 초봄이 지나 따뜻해지고 꽃이 필 때 쯤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날씨가 일시적으로 다시 겨울처럼 추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봄꽃이 피는 걸 시샘한다 해서 꽃샘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임순옥 작가의 단편 소설집 『꽃샘추위』는 사춘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마음의 봄에 느끼는 다양하고 낯선 감정을 다루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첫 번째 작품은 단편집과 동명의 소설인 『꽃샘추위』로 두 소녀의 이야기이다. 시소를 함께 탄 세은이와 민주는 시소가 수평이 된 것에서 서로에 대한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며 관계를 시작한다. 두 소녀는 타인과 나 사이의 공통점을 인지하며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만 하나 둘 마주하는 서로의 차이점에 불편한 감정이 싹튼다. 화자인 민주는 자기와 닮았다고 느꼈던 세은이 자신보다 더 나은 학업적 성취를 보이고, 가정의 경제상황도 비교우위에 있는 것을 확인하며 점차 마음이 수평에서 멀어져감을 느낀다. “열등감 쩐다”는 세은의 말에 민주는 마음속을 불편하게 했던 감정의 정체를 마주한다.
두 번째 작품은 『자전거 비행』으로 두 소년의 이야기이다. 우영은 친구 선재와 자전거 라이딩을 함께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는데, 전문적인 복장을 한 선재의 모습이 낯설다. 우영의 낡은 8단 기어 자전거로는 허벅지가 터질 듯 페달을 밟아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새 자전거를 탄 선재와는 달릴수록 거리가 더 멀어졌다. 우영은 덜컥거리는 낡은 자전거가 마치 자신의 모습같아 화가난다.
세 번째 작품은 『노랑머리 신준호』이다. 화자인 은재는 마을 바자회에서 노랑 머리를 한 할머니를 만나고, 같은 학교 친구인 노랑머리 준호가 할머니의 손자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할머니의 지나가는 말로 준호가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산다는 것을 눈치챈다. 은행잎처럼 쨍한 노랑머리 할머니와 소년, 평범하지 않은 가족구성이 낯설지만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무신경한 과제를 내는 선생님께 당돌하게 ‘사생활’을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생애 주기에 따른 발달 과업이 있다. 영유아기에는 부모와의 애착을 통해 세상에 대한 신뢰를 형성한다. 유아기는 “내가 할거야!”하며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주도성을 형성하고 전인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이다. 아동기는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통해 근면성을 발달시키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도덕성을 형성하며 소속된 집단에서 긍정적 소속감을 갖고 사회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청소년기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위치를 확인하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어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청소년기의 발달 특성상 이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그로 인해 좌절도 겪게 된다.
위 세 가지 이야기의 아이들 모두 아동기에서 청소년기로 가는 문턱에 선 아이들로, 친구의 ‘다름’을 마주하며 ‘꽃샘추위’처럼 불편한 마음의 온도를 체감한다. 비교열위에서 오는 열등감, 샘나는 마음,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를 느끼지만 이내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소’도 재미있을거라 기대하게 되고, 서로 소소하고 은밀한 일탈을 공유하며 다시 공감대를 형성한다.
자본주의가 과열된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소비를 이끌어낸다. 사람들은 인스타, 유튜브 등 각종 SNS에서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의 특별함을 뽐내기 바쁘다. 남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시샘하고 욕하면서도 또 쫓아가고 싶어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업들은 ‘이 정도 최신유행 아이템은 가지고 있어야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며 소비를 부추기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특별한 아이템을 가져야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또 지갑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며 뽐내더라도 그 소비는 끝도 없고 마음은 공허할 뿐이다.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청소년기의 발달과업인데, 이것을 수행하여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인가, 아니면 이 탐욕적인 자본주의 세상이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붙들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아이들이 낯선 존재와의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은 쉽지만은 않지만,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뻔하지 않은 재미가 펼쳐지며, 단순하고 순수한 즐거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이라고 했다. 이는 비단 세상을 새롭게 만나고 알아가는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재산, 배경, 직업, 능력, 배우자, 자식까지...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에 지친 현대의 성인들이야말로 나의 ‘다름’이든, 타인의 ‘다름’이든 존재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관계맺기를 시작해야한다. ‘지구 위의 쓸쓸한 점 하나하나가 이어져 다정한 무늬를 만들어 가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 세상에서 유일한-그 누구와도 다른 ‘나’라는 점들이 서로를 밟고 경쟁적으로 오직 더 높이만 올라가려는 수직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넓게, 둥글게 어우러져 다채로운 빛을 내는 아름답고 다정한 무늬가 되어 세상을 물들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마음대로 안 되는 바람이 나를 자꾸 흔들어 댔다. ‘우리는 왜 다를까?‘ - P32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속력이 자신을 삼킬 것 같았지만 우영이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좀 전까지 으르렁거리며 덤벼들던 감정들이 별것 아니게 느껴졌다. 끓어올랐던 화가 먼지처럼 날아갔다. 우영이는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비행하듯 달려나갔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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