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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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안되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을때면
평소 넘쳐나는 생각들은 두배로 증폭되고,
내가 하고있는 또는,
나와 접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어딘엔가 숨어들어서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내가 동화가 잘되는 성격이라는 것은 익히 잘알고 있지만,
특히 하루키의 글과는 코드가 맞아떨어져 버린다.

그게 문제다.

 

"상실의 시대"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남녀가 만나고 여자의 죽은 애인은 남자의 절친한 친구이고,
특별히 잘난 구석도 없는 남자는
어쩐지 여자들의 시선을 받아버려서는
끊임없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가고,
결국에는 두사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렇게 흔하고 흔한, 널리고 널린, 그런 연애소설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루키의 문체랄까,
그 표현력이랄까 그런것이 문제다.

 

하루키의 글은 무겁고 차분하게 가라앉자서
감정의 침착함을 극대화 시키는데도
거기의 있는 그 무게감이라는 것은 어두운 무거움이 아니라,
뭐랄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순식간에 짙은 보랏빛 먹구름이 가득차서는
거들먹거리는 것을 느끼고 sentimental 하다가,
드디어 쉴새없이 세상을 집어삼킬듯 비를 쏟아내는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해져버리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중에는 알수가 없어져서
세상을 혼자라도,
사랑도, 사람도 없이 살아갈수 있을듯한
그런 이상한 의식을 심어버린다.

 

그래서 읽으면 안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한 기억이나 느낌따위는 또 잊어 버리고
하루키의 다른책을 펼쳐들곤 다시금 겪게되는 끊임없는 감정의 반복.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버리는 어떠한 습관처럼
나도 벌써 그러한 감정의 반복에 중독되어
주기적으로 하루키를 읽어내려가고 있는것일지도 모른다.

 

이젠 그가 오래오래 장수해서
더 많은 약물을 써내려가길 바랄수 밖에.


by.jinna
[Jan. 18, 2006 ~ Jan. 25, 2006]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하루키에게 중독된 사람들은 그런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의 글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나 분위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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