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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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바다여행에서 난 수영을 못하는 친구를 데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조금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하는 오만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 부표 있는 곳까지 헤엄쳐간 우리에게 커다란 파도가 덤벼들었고, 그 과정에서 내 친구는 튜브를 놓쳤고 물에 뜨기 위해 나를 짓눌렀다. 그 숨 막히는 순간에 든 생각은 이래서 바다에서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하는 생각이었다. 그 후로 무사히 인명구조요원에게 구조되긴 했지만, 나는 해수욕장과 바다를 볼 때면 그 기억이 떠오른다. 존 밴빌의 <바다>를 읽는 내내 나의 경험이 같이 떠올랐다.

 

이 책은 아내를 잃은 한 남자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喪妻傷處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어릴 적 바닷가 마을에 있던 시더스를 방문한 맥스는 뜻밖에도 다른 상처와 조우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클로이와 마일스의 익사. 이 잔인한 고통은 맥스의 삶에 보이지 않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후반부에 맥스가 술을 마시고 바닷가에서 정신을 잃었듯 맥스의 무의식속에 항상 잠재해있었다. 그럼에도 맥스가 구조되고 다시 보살핌을 받는 과정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기억을 통한 치유를 나지막이 반복해서 독자에게 들려준다.

 

아내 애너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주인공 맥스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겹겹이 이어진다. 마치 파도처럼 이 한편의 기억이 다른 한편의 기억을 덮고, 그러고 나면 다른 기억이 밀려온다. 인간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 밴빌은 <바다>를 통해 기억의 불완전성과 완전성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기억은 움직임을 싫어한다. 사물을 정지된 상태로 유지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206p)는 맥스의 말처럼 기억은 하나의 그림이 되어 계속 재생되어지고 이미지화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된다. 시더스에서 자신을 돌봐주던 배버수어양이 바로 로즈였고,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이 그레이스 부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기억은 사실여부와는 무관한, 철저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개개인에게 저장된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 그에게서 쌍둥이는 신이었고,(104p)’ 클로이는 세계가 클로이에게서 처음으로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 나타났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158p) 때문에 중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들의 죽음도 맥스에겐 바다로 떠났다’(11p)는 인식을 남기는 것이다. 원래 그들이 있던 곳, 신과도 같던 이들이 그들이 원래 있던 자궁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저자는 맥스가 자신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의 완전성을 이야기한다. 기억이란 늘 다시 찾은 과거의 사물이나 장소에 자신을 매끈하게 일치시키려고 열심이니까.(140p)’정말이지 기억하려는 노력만 충분히 기울이면 사람은 인생을 거의 다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151p)라는 말들은 기억을 통한 마음의 재생(再生)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복기를 통한 상처와의 조우가 어쩌면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을 완성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맥스에게 중요한 두 가지의 이 사건들은 바다라는 모티브를 통해 연결된다. 유년시절 벗들인 쌍둥이가 죽은 곳과 아내인 애너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을 들을 때 맥스의 기분이 마치 바다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았다’(243p)는 데서 바다는 주인공의 상처와 기억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바다의 이미지는 신들이 자리하는 곳인 동시에 차마 자신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곳이다. 내가 동경하는 존재들이 잠든 반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생사의 갈림길에서 들었던 바다에 대한 무한한 공포심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들었다. 멀리서 본 바다는 평화롭고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하지만, 막상 그 무서움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바다는 경외심마저 드는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된다. 마치 맥스에게 그러했듯이..그렇게 내 기억 속에 자리하던 바다는 밴빌에 의해 다시 끄집어졌고 또 다시 맥스의 바다의 기억을 덧입힌 또 다른 이미지로 뇌리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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