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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평점 :
<파수꾼>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의 여운과 감동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하퍼리의 20년만의 신작 '파수꾼'에 대해 많은 기대를 품고 읽었을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영웅 애티커스 변호사는 인종차별과 백인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70대 노인이 되어있고, 젬은 죽었으며, 스카웃은 변해버린 아빠의 모습에 환멸과 혼란을 느낀다. 독자들 역시 스카웃에 감정이입이 되어 애티커스의 변절을 충격과 슬픔으로 접하게 될 것이다.
이 '파수꾼'이란 책은 '앵무새죽이기'보다 먼저 쓰여졌다고 한다. 저자의 금고에서 50년 후에 찾아내 출판한 것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앵무새 죽이기'의 속편처럼 시작한다. 성인이 된 스카웃은 뉴욕에서 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메이콤에 들려 아버지와 남자친구 헨리의 변화를 알게 된다. 그것은 kkk같이 급진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발언이나 행동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앵무새죽이기'의 톰 로빈슨 사건의 변호를 하던 아빠는 사라지고 현실과 타협하는 실망스러운 아빠만이 남았는데 스카웃이 이를 직면하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다가 잭 삼촌의 설명과 가르침으로 아빠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만의 파수꾼을 세우는 스카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처음에는 스카웃처럼 '왜 아빠가 이렇게 변했지?' '그간 무슨일이 있었던거지?'라는 생각 등등을 했었는데 읽으면서, 잭 삼촌의 말을 들으면서 '파수꾼'은 '앵무새죽이기'의 또다른 한 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앵무새죽이기'의 영웅 애티커스를 똑똑히 기억하고 그를 추앙한다. 그는 흑인 인권과 인종차별철폐의 선구자로 여겨졌고 백인 중심적인 남부 앨러배마 주에서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인물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여 하나의 고유명사화가 되려는 순간 우리는 스카웃처럼 '또다른 애티커스'와 마주해야 한다. 너무도 올바른 하나의 善이 절대선이 되어가는 과정을 깨부수는게 바로 '파수꾼'의 역할이다. 여기서 잭은 경계를 설정해주는 파수꾼이 각자인 자기 자신이라고 이야기 한다.
각자의 섬은 말이다, 각자의 파수꾼은 각자의 양심이야. 집단의 양심이란 것은 없어.372p
그리고선 스카웃이 형성한 절대적 가치를 자신만의 가치로 바로세울 것을 종용한다.
~너는 정서적 불구자였어,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항상 네 답이 곧 아버지의 답일 거라 가정하고 답을 구해 왔지. ~너는 너 자신을 죽여야만 했는데, 네 아버지가 너를 독립된 실체로서 살아가게 하려고 너를 죽여야만 했던 거야. ~네 아버지는 너 스스로 우상들을 하나씩 부수도록 내버려 둔 거야, 네가 스스로 아버지를 인간의 신분으로 떨어뜨리게 만든 것이지. 372p
이 부분에서는 니체의 '우상파괴'가 연상된다. 니체는 신이나 절대적 가치를 설정해놓고 거기에 얽매어있는 인간들에게 과감하게 '우상을 파괴할 것'을 주장하며 '신은 죽었다'고 외친다. 이처럼 우리는 인종차별이 철폐되어야 하고 흑인도 백인과 동등해질 것을 주장하는 절대선을 설정해 놓고는 거기에 얽매인다. 그래서 스카웃처럼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기라도 하면 타락했다고 치부하며 경멸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이 소설은 나에게 그러한 답을 주었다. 저자는 애티커스를 설정하면서 동시에 애티커스가 꼭 정답일 필요는 없다고 다시 이야기한다. 애티커스는 사회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 해결책일 뿐 절대적인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티커스를 절대선으로 치부하고 경계 지어버릴때, kkk나 대다수 남부 백인들의 가치관과 기준은 악이 되어버리는 모순점이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삼촌이나 아빠, 헨리 등은 타협점이라든지 자기만의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여기서 스카웃이 느끼는 좌절은 스카웃이 홀로서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 겪어야할 성장통인 것이다.
나는 물론 내 딸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물러서지 않았으면 했지. 가장 먼저 내게 맞섰으면 했어. 390p
저자는 우리가 둘중의 하나의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가치에 맞서 싸우는 것과 타협하는 것 중 어떠한 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하지도 않는다. 단지 절대적 가치를 설정하는 파수꾼에 의존하지 말고 나만의 파수꾼으로 나만의 가치를 정립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실망한 독자들에게 나는이렇게 말하고 싶다. '파수꾼'은 '앵무새 이야기'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으며, '앵무새이야기'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야할 작품이라고.. 저자의 다른 두 목소리를 통해 기존의 가치관이 깨지는 통렬한 경험을 하게 되어 즐거웠으며, 나만의 파수꾼을 세운 것 같아 만족스러웠던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