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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현대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인 '앵무새죽이기'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 앨러배마 주의 메이콤이란 마을이다. 당시 대공황이란 시대적 배경과 함께 미국 사회, 특히 남부 주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주제로 다루었다. 주인공인 스카웃은 네살위 오빠와 변호사인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다소 톰보이 기질이 있는 여자아이이다. 스카웃의 학창시절은 아빠인 에티커스 변호사가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기 시작하면서 놀림을 당하게 되어 곤란해지게 된다. 당시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만연하여 톰 로빈슨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백인인 유얼의 편을 들기 위해 강간죄를 인정하여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리게 된다. 이에 오빠인 젬과 스카웃은 낙담하게 되지만 동시에 훌륭한 아빠의 인격도 보게 된다. 이와 함께 자신에게 망신을 주었다고 생각한 유얼이 앙심을 품고 젬 남매에게 위해를 가하려던 위기의 순간 젬과 스카웃이 항상 두려워하며 조롱했던 래들리 아저씨가 구해준 것에 따른 감사표시로 이 소설이 끝난다.
흑인 대통령이 TV에 나오는 요즈음에서 불과 1세기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1930년대와 현재의 인식이 이렇게 다를까 싶기도 하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여자이건 남자이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명제가 우리 삶에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이 참 길고도 지난한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스카웃의 담임 선생님의 경우, 유대인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히틀러를 증오하면서도 흑인을 경멸하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고 메이콤 마을의 대부분의 백인들도 그러하였다. 배심원들이 로빈슨이 무죄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유죄평결을 내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 진압 등의 경우 흑백 대립과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등은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처럼 여성대통령의 등장이 여성의 인권신장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이 미국에서 흑인대통령의 등장이 흑인 인권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흑백과 함께 혼혈들의 문제도 약간 다루고 있다. 혼혈은 다문화시대인 현재 그렇게 주목받는 요소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흑인과는 또 다른 어떠한 차별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눈으로 관찰된 혼혈은 불쌍하면서도 긴 대화를 나누긴 힘든 어떠한 기이한 '종족'으로서의 존재였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혼혈과 외국인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옛날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아주 그러하지 않다고 할수는 없지만 일단 신기해하는 단계는 넘어섰다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신기해 하는 것, 이것이 '차별'의 첫 단계가 아닐까.
이 소설에서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소외된 이의 재발견인데, 바로 이웃집 래들리씨이다. 스카웃과 젬, 친구 딜은 학창시절 비행으로 줄곧 집안에 갇혀 지내는 아서 래들리에 대한 공포와 호기심으로 어린시절 무모하게 도전하기도 또한 조롱하기도 해가며 멀리해왔다. 그러나 나무위에 소중한 것들을 놓아두는 것이나 자신의 집에 침입한 젬의 바지를 수선해준 것 등 의외로 따뜻한 면모를 보여왔던 래들리는 결정적으로 유얼의 해코지에 맞서 젬 남매를 구해준다. 이를 계기로 스카웃의 마음속에 드리워있던 래들리에 대한 편견이 해소되고 화해의 국면을 맞게 된다. 이렇듯 겉모습만 보고, 소문만 듣고 지레 판단해버리는 우리들의 나쁜 편견에 대해 진실을 보라고, 진면목을 볼 것을 종용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514p
또한, 이 소설에서 인권운동의 선구자로 보여지는 애티커스 변호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판사가 이 불공정한 재판에서 변호를 맡길 정도로 진솔하며 '정의'의 원칙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정의를 알고, '평등'을 몸소 실천하는 그래서 같은 백인들 사이에서 모진 말과 모욕을 듣지만 포기하지 않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저자는 미친개를 쏘아죽이는 애티커스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비로서 아버지가 '명사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애티커스의 여러 훌륭한 면모들이 '절제'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힘이 없어서 약자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힘과 능력이 있지만 약자편에 서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200p.
마지막 장면에서 항상 원칙과 정의를 앞세웠던 애티커스 변호사가 애들을 구해준 사람까지 법정에 세워서는 안된다는 보안관 테이트의 말에 말없이 동의한 장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편, 이 소설은 9살 스카웃의 시선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길머 검사가 로빈슨에게 함부로 대하는 장면에서 딜이 우는 것 등은 아이들의 순수함을 이야기해준다. 어릴때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조금만 커져도 차별과 억압에 대해 당연시하는 어른이 되어 간다는 사실에 씁쓸해지지만, 에티커스 같은 비범한 사람이 있기에 희망도 있는것 같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될 테니.」372p
애티커스의 변호가 비록 실패로 끝나고 톰이 탈옥하려하다 죽음을 맞았지만, 그렇다해도 그 시도는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의 가슴에 미묘한 변화가 일었고 이러한 변화처럼 다른 마을에도, 다른 주에도, 뒤이어 미국 전역에도 '평등'과 '차별철폐'의 바람이 일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변혁'하는데에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대자들도 많고 좌절도 겪을 것이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399p
그래도 이렇게 흑인 편에서 친구가 되고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시도가 역사를 만들고, 진전을 일궈낼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이 소설은 소녀 스카웃이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소설인 동시에 사람들의 인권의식 성장과정을 보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