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너의 부모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꿈꿨다. 진짜 엄마, 아빠가 짠하고 날 데리러 와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사춘기 즈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잔소리를 하는 엄마 말고 날 이해하는 다정한 엄마가 있을 거라고. 사람 좋은 아빠 대신 냉철하게 이끄는 아빠가 나타날 거라고. 바람처럼 일었던 감정은 찬찬히 사그라들었고, 입으로 뱉어내지 않은 속마음이 다행스러웠다. 나이가 드니 들키지 않았다 여겼던 내 마음은 분명 티가 났을 텐데 모른 척 넘어가준 부모의 그릇이 새삼 감사하다. 내가 그리는 부모가 있길 바랐듯 부모 또한 원하는 아이가 있었겠지. 난 부모에게 버리고 싶지 않은 아이였을까? 버리고자 했다면? 지금 하늘에 뜬 달이 몇 개인지 살펴보자. 하나가 맞는지.그림책 <완벽한 아이 팔아요>가 떠오른다.첫문장 길을 잃었다.p.74 “누나는 길이 아니라 기억을 잃었어.”“내 말은, 길은 잘 찾을 수 있다는 뜻이야.”p.83 사람들은 가닿을 리 없는 그리움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p.98 “나도 그러려고 했어. 아빠가 지금의 너에게 만족했다면.” “아빠가 내게 만족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오래 머뭇거리던 오빠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또 다른 시은이를 데려오겠지.”p.159 다정한 아빠는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알고 그걸 지지해 주는 거라고.p.225 진짜 내 삶을 살고 싶어. 그게 지옥 같다면, 그것도 감수할래. 이제야 알았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세계를 바꿀 게 아니라 날 바꿔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