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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씨 이야기 ㅣ 사계절 민주인권그림책
장재은 지음 / 사계절 / 2024년 5월
평점 :
무거운 주제의 그림책은 아이들보다 제가 먼저 피합니다.
경주마처럼 눈 옆을 막아서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볼 수 없고, 영상매체가 풍성해지면서(물론 영상매체가 늘어나기 전에도 꾸준히) 자극적인 것에 반응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도 '아직은' 이라는 단서를 달며 아름다움과 귀여움 어디쯤에서 헤매는 어른의 모습을 한, 마음만은 아직 어린이입니다. 세상사 힘든데 행복하고 싶어 보는 그림책까지 어두워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서 그런가봐요. 그런 와중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세 권의 인권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 권은 희망도서를 신청하여 어떤 책인지 확인했고요. 이 책은 겁이 나서 보지 못하고 있었어요. 어떠할지 제목에서 슬쩍 스포 느낌이 왔거든요. (우리네 삶 깊숙한 곳에 자리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서웠을까요?) 이렇게 보게 되다니 새삼 심장에 바위만한 돌덩이 하나 턱 얹어놓은 것만 같아요.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서평소식이지만 열심히 보렵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표지의 연두연두한 색감과 주황빛 붉음이 아, 우리나라 느낌이 아닌데! 이건 동남아시아 어디쯤이려나? 더운 나라 어디쯤인거 같은데 싶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삿갓과 비슷한 베트남 모자('논 라'라고 부른대요. 논=모자, 라=나뭇잎을 뜻한답니다.)를 쓴 자전거 운전자도 보이고, 열대나무도 보이네요.

다국어로 쓰여진 쓰레기배출방법안내를 보니 여기는 어디인가 잠시 혼선이 오기도 하고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곳은 어딘가의 공장지대네요.
정밀가공이라는 글자가 간판도 없이 벽에 쓰여진 곳, 타오 씨의 일터겠군요. 정밀한 가공을 요하는 작업, CNC가공을 하는 곳인가 보군요. CNC는 간단히 말하자면 쇠붙이라 부르는 금속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프로그래밍해서 기계에 넣고 꽉 조여준 후에 시작하면 프로그래밍한 상태로 가공물이 나오는 방법인데 금형이나 주물보다 단단하지만 많은 작업물이 한꺼번에 쫙 뽑아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요즘엔 그렇게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고, 이쪽으로 취업하려는 사람도 흔치 않아서 예전 전문가들의 뒤를 이를 세대가 없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들었네요. 배워본 기억이 나서 슬쩍 얹어본 이야기입니다. 뭐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프로그래밍은 할 사람이 있으나 위험하고, 힘든 수고로움을 싼 임금에 맡기는 것일 테고요.
쇠붙이의 잔해가 정말 많기도 하고 쇠가 작업장에 많아서 엄청 위험하기도 하다는 이야기도 지인에게 들었던 기억이 나고요. CAD부터 시작되는 CNC 세계는 3D직업군이라고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타오 씨는 이곳에서 사장, 사장의 아들,같은 이주노동자 이모와 함께 일하고 있네요.


아직은 한국말이 어색하고 힘든 타오 씨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기계소리보다 크게 들린다는 장면은 '관계의 단절'이 얼마나 큰 어려움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쿡 막혀옵니다.
그림책은 '그래서 타오 씨는 딸과 행복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고요.' 따위의 판타지를 보여주지 않아요. 그런 희망에 의존하지도 않고. 그래서 더 슬프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그들의 두려움과 어려움은 언제까지 계속 될지 상상도 할 수 없고요. 그저 그들의 삶을 전해주죠.
이주노동자, 단어에서 전해지는 묘한 이질감과 더불어 현시대 우리나라에도 너무나 많은 인구수에 포함될 그들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어떠한 원인이나 이유에서든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는 그들, 특별히 내게 잘못을 하지도 않았으나 뭔가 불편하기도 했어요. 나와 다른 인종이라는 경계심이었는지, 외모에서 오는 색안경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내 인의 무엇으로 인한 것이든 솔직히 불편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어린이가 아닌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은 노동자로 분류되겠지요. 노동의 경중을 떠나서요. 분명 같은 노동자인데 우리가 받는 대우는 너무나 처절하지요. 노동의 쉽고, 어려움을 따진다면 더 귀하고 고맙게 여겨져야할 그들의 노동력은 어떻게 매겨진 값인지 제값을 못받고요. 우리나라 간호사와 외국 간호사의 급여 차이가 놀랍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능력을 알아주는 곳에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깊이 고민해봐야 할텐데 누가 그 고민을 하고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내,외국인 노동자 모두에게 제대로 값쳐주고 그들의 수고로움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민주인권그림책 <타오 씨 이야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이야기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