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시선 156
함민복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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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쌓은 벽과 내가 쌓은 벽 사이에 꽃 한송이 피어나고 당신의 지난날과 내가 지나온 날들이 그 꽃위에 바람되어 불고 ..... " - 시인과 촌장의 노래 <때> 중. 

소중한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시집을 받았다. 제목을 보자마자 시인과 촌장 노래 <때>가 떠올랐다. 이렇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수가. 두 '시인'들이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모든 경계엔 꽃이 핀다고. 

한장 한장 넘기며 찬찬히 읽어나갔다. 시 하나를 읽으니 자그만 세계 하나와 만난다. 가느다랗고 연약하다가도 갑자기 광대해지고. 좁은 관 속과 방 구석에 있다가도 어느새 폭포앞이다. 달이 되고 바위가 되더니 어느새 천장에 붙어있는 파리가 된다.  

내 시선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존재들에 이토록 섬세한 세계가 있다니.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게(80p '게를 먹다')도, 단단한 바위(46p '石月')도 삶을 살고 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게와 바위의 딱딱함과 단단함은 고통이 빚어낸 살들이었다.

세상 그리고 가난과 사랑에 대한 시가 많다. 평범한 남자의 욕망을 그린 재미난 시도 있고 대놓고 자본주의를 꼬집은 시도 있다. 얇은 시집 한권에 세상 풍경이 한소큼 담겨 있다. 

훌륭한 시들이 많다. 내가 가장 감응했던 부분은 '詩人1' 의 다음 구절이다. 

"..... /새는 날개의 길을/ 울음 소리로 가 본다네/ 그렇게 한 生을 이울이면/ 눈동자가 염전이 될 수 있을까/ 태양을 흘러 넘친 햇살이여/ 라일락 꽃 향기가 되어 흩날리는 " 

그렇게 한 生을 이울이면. 그렇게 한 生을 이울이면. 이부분이 참 좋다. 있는 힘을 다해 이울인 존재의 눈물은 깊고도 깊어 짠 맛이 날 것만 같다. 그렇게 깊고 짠 눈동자. 조용히 나는 새와 고요히 생을 이울이는 존재의 모습이 떠오르자 감동이 밀려왔다.   

맨 뒤쪽 차창룡 시인의 발문도 참 좋다. 함민복 시인과 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다. 꼭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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