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섬진강 ㅣ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평점 :
중고등학교 시절, 시는 누런 교과서와 문제집 속에서만 보였다. 간간이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시로 인한 '감동' 보다는 검은'밑줄'이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밑줄 없는 깨끗한 시는 불편했고 어색하기만 했다.
작년 늦가을, 우연히 이 시집을 읽게 됐다. 농촌마을 취재 준비 차 농촌과 농민의 정서를 느껴보고 싶었다. 정일근 시집, 이선관 시집, 섬진강 이렇게 3권을 집었는데 출장 때 들고 간 것은 달랑 이'섬진강' 한 권이었다.
늦은 저녁, 여관 침대에 앉아 맨 끝에 있는 후기부터 거꾸로 읽어나갔다. 한장 한장 앞으로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다. 맨 마지막에 실린 '어머니 이야기 - 밭가에서'를 처음으로 읽었다. 말이 시이지, 그 길이가 엄청나게 길었다. 한줄 한줄 읽어나가는데 와. 도중에 책을 덮고 말았다. 취재하며 농민들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절절한 김용택의 시는 농촌과 농민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시인의 섬세한 눈으로 곱고 곱게 썼다기보다, 시골 계신 어머니가 주름 깊은 얼굴로 내뱉는 하소연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만 같았다.
'어머니 이야기'에서부터 '섬진강 1'까지 한번도 거스르지 않고 '거꾸로' 읽어 나갔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방식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차례'를 거스른 방식이었지만 왠지 흐름이 끊길 것 같아 계속 거꾸로 읽어 나갔다.
섬진강4-누님의 초상, 네가 살던 집터에서, 오월편지-누이들에게, 어머니 이야기-밭가에서는 유독 더 애정이 가는 시들이다.
김용택은 후기에서 "시가 다 뭣이다냐"라고 말하는 늙은 어머니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자신의 '시쓰기'는 한없이 보잘것 없는 행위로 치부한다. "평생을 몸부림으로 살아도 그 분의 삶 한 끄트머리에도 닿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닿을 수 없는 끄트머리 가까이 그 분들의 생(生)을 대신해 들려주는 그의 삶도 충분히 고귀하고 훌륭해 보인다.
내 글이 그의 시 끄트머리에만 닿을 듯 닿을 듯 닿기만 해도, 나는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