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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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압축기 속에서 35년을 일해온 한탕카라는 노인의 고독한 독백이다. 그는 매일 종이 더미 속에서 철학서, 고전 문학, 종교서적을 발견하고, 그 책들을 압축해 사라지게 하면서도 그 문장들을 머릿속에 품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책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 책 속의 사상을 자기 안에서 ‘살려낸다.’

이 작품이 강렬한 이유는, 고독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생각과 의미의 밀도’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다. 한탕카의 작업장은 더럽고 폐쇄적이지만, 그의 정신은 플라톤과 니체, 예수와 라오쯔가 오가는 웅대한 서재다. 세상은 그를 하찮은 노동자로 취급하지만, 그는 압축기 안에서 인류의 사유를 끌어안는다.

책의 문체는 흐라발 특유의 ‘무한히 이어지는 문장’으로, 숨 쉴 틈 없이 독자를 끌고 간다. 그 리듬은 마치 압축기가 종이를 삼키는 소리와 겹쳐지고, 동시에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사상들이 윙윙 울리는 소음과도 같다. ‘너무 시끄러운’ 건 세상의 소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솟구치는 생각과 기억, 문장의 울림이다.

결국 이 소설은, 버려진 종이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사유의 가치를 붙잡는 이야기다. 그것은 마치 쓰레기장에서 꽃을 꺾는 행위처럼, 고독 속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길러내는 비밀스러운 노동이다. 읽고 나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내 머릿속을 울리고 있는 소음은, 세상의 소란인가, 아니면 나만의 깊은 고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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