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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70만부 기념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요즘 출간되는 에세이들을 책장에 나란히 세워두면,
표지의 감도나 문장의 길이에서부터 어떤 흐름이 보인다.
가볍게 읽히되, 마음에 오래 머무는 말’을 지향하는 트렌드다.
작가의 삶 한 모퉁이를 조각처럼 떼어내어 독자 앞에 두고,
‘당신도 이런 적 있지요?’라고 묻는 방식.
제목마저 ‘무심히 놓아두어도 감성으로 번져가는’ 어감을 택한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언어의 온도》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감성’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이라는 도구의 무게와 결을 오래 더듬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언어의 예절’을 복원하려는 장인정신처럼 느껴진다.
요즘 에세이들이 순간의 정서를 포착해 ‘공감’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언어의 온도》는 그 정서가 빚어지는 과정을 차분히 해부하며 ‘성찰’의 온도를 올린다.
최근의 에세이들이 SNS의 짧은 피드처럼 ‘즉시 소비되는 감정’에 기울어 있다면, 《언어의 온도》는 오히려 오래 묵혀야 맛이 드는 발효 음식 같다.
서두르지 않고, 독자의 호흡까지 함께 늦춘다. 그래서 읽고 나면 ‘좋았다’보다 ‘곱씹게 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결국 이 책은 시대의 흐름과 다소 어긋난 듯 보이지만,
그 어긋남이 곧 매력이다. 유행의 파도 위를 부유하는 책이 아니라,
언어라는 바다 밑바닥에 닿아 있는 닻처럼,
독자가 잠시 멈춰 서도록 만든다. 요즘의 에세이들이 물 위의 반짝임이라면,
《언어의 온도》는 그 빛이 내려앉는 깊이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