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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를 바꾸다 ㅣ 아이앤북 창작동화 22
고정욱 지음, 에스더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해봤을 재미나고 엉뚱한 상상을 책 속 현실로 만들어준 책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
두 가족의 모임에서
일주일동안 엄마, 아빠를 바꾸고 아들을 서로 바꿔보자는 이야기가 장난삼아 나왔는데
실제로 아들과 부모님을 바꿔 생활해본 경진이와 영준이네 가족 이야기거든요.^^
결론은 짐작하셨듯이 "바꿔보니 역시 우리 가족이 최고!" 란 거지만
재미난 상황들이 끊임없이 웃음을 전해줍니다.
영준이는 벌레 따위는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사내아이답게 씩씩하고
배고프면 라면도 혼자 끓여먹을만큼 수단도 좋고 넉살도 좋은 아이지만
영어공부도 싫어하고 방청소도 전혀 안하는 상당히 지저분한 아이라
영준이 엄마, 아빠의 잔소리를 듣곤 합니다.
반면에 경진이는 각종 상을 휩쓸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어른 빰치게 정리정돈도 기막히게 잘하지만
벌레를 끔찍이도 무서워하고 운동도 싫어하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약해빠진 샌님 같은 스타일이라
경진이 엄마, 아빠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곤 하죠.
일주일간 부모님과 아들을 서로 바꿔보니
처음엔 (남의 자식의) 장점으로 보였던게
슬슬 참아내기 힘든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자식의) 단점으로 보였던건 장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니
참 아이러니하고 재밌습니다.
영준이 부모님은
덜렁댄다며 못마땅하기만 했던 영준이의 단점이 실은 아주 사내다운 거였단걸 알게 되고
경진이 부모님은
사내답지 못해도 매사 차분한 경진이가
터프하고 지저분한 영준이보다 훨씬 낫단 걸 깨닫게 됩니다.
남의 자식 장점은 크게 보이고 자기 자식의 단점은 크게 보이는건
책속에서도 마찬가지라 상황이 정말 재밌었어요. ^^
저 역시 영준이, 경진이 부모님들처럼
우리 아들의 단점은 아주 크게, 장점은 아주 작게 보는 독특한 재주가 있습니다.
우리 아들은 사내아이답지 않게 마음 씀씀이가 참 섬세하고 고운 아이예요.
처음 뵙는 어르신들께도 인사를 잘해 아파트 내에서는 착한 아이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제 얼굴은 몰라도 우리 아들 얼굴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유모차를 끌고 내리는 아주머니나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
먼저 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열림 단추를 계속 눌러주기도 할 정도로 착합니다.
하지만 전 우리 아들이 못마땅합니다.
실은 착하지 않은데 착해보이려 애를 쓰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혹 하기 싫은데 칭찬 듣기 위해 저런 일을 하는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착하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세상이라 친구한테도 이웃한테도 양보만 하는 아들이
엄마인 제 눈엔 바보 같아 보이고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실제로 착한 걸 이용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우악스러운 것보다는 낫다고 안도하면서도 손해는 보지 않을만큼 적당히 착했음 하는게
제 솔직한 바람입니다. ^^;;
단점이라면 성적은 그리 나쁘진 않지만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한다는거죠.
요즘 아이들 너도나도 다 올백입니다.
90점 정도 맞아서는 잘하는 아이들과 어깨도 나란히 할 수 없죠.
성격은 섬세한데 왜 시험지 볼때는 섬세하고 차분하질 못할까요?
시험지를 대충 풀고 먼저 선생님께 제출한 다음
평소엔 잘 읽지도 않는 책을 봤다고 했을때
속에서 부글부글 울화가 치밀어올라 등짝을 퍽 소리나게 때려줬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것만큼 자기 성적도 배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경진이랑 비교하기에는 공부를 잘 못하고
영준이랑 비교하기에는 사내답지가 못하죠.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 아들은 경진이, 영준이보다 몇배 낫습니다.
경진이처럼 영어 발음 좋다고 영어학원 선생님을 은근히 무시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을만큼 남을 잘 배려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영준이처럼 남의 집을 정신없이 어질러놓을만큼 무신경하지 않습니다.
자기 방은 어질러놓을지언정 남의 집에선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만큼
싹싹하고 예의 바른 아이죠. ^^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인 제 외(여)조카는 각종 상을 휩쓸만큼 똑소리나는 아이입니다.
선생님과 상담할때 언니한테
"어머님은 무슨 걱정이 있으시겠어요?"라고 이야기할정도로
매사 똑부러지는데다 이모인 저하고도 죽이 척척 잘 맞습니다.
하지만 잔정이 없어 가끔 저를 아주 서운하게 만들죠.
시시때때로 책선물에 옷선물을 해주고 하나밖에 없는 조카라고 금이야 옥이야.
어찌보면 우리 아들한테 줄 사랑의 배 이상을 쏟아부었는데도
피 한방울 안들어갈듯 차갑고 자기 엄마 밖에 모르니 제가 서운할밖에요.
그런데 우리 아들한테는 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해본적이 한번도 없네요.
매사 누나처럼 하라며 우리 아들한테 대놓고 상처를 줬던게
이 책을 읽고난 후 그렇게 미안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경진이보다, 사내다운 영준이보다, 매사 똑부러진 우리 조카보다
어수룩하지만 정 넘치는 우리 아들이 전 최고로 좋습니다.
내년이면 하버드에 들어갈 아들딸이 제 아들딸하겠다고 경쟁한대도
우리 아들과 절대 바꾸지 않을겁니다. 그만큼 우리 아들이 제게는 최고니까요.
이런 제 마음을 우리 아들 꼭 껴안으며 지금 당장 온몸으로 표현해봐야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최고야.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영원히 최고!" 라고 이야기하며 말이죠.
우리 아들이 역시 최고라 느끼게 해준 참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