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 - 박서보의 삶과 예술
박승숙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7월
평점 :
화가 박서보는 추상미술과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임을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배웠었다.
하지만 사진으로만 보는 박서보의 작품에서는
어떠한 느낌인지 알기 힘들었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더 나아가 박서보의 인생관은 어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책 제목을 너무 잘 맞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박서보의 딸이자 이 책의 저자인 박승숙이
자신의 아버지였던 박서보라는 인물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또는 딸의 시선으로 기록해 놓았는데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까지
한국의 미술 역사를 이끌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순서로 흘러갔고,
박서보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들을 주제에 맞게
챕터로 나누어져 있었다.
단순히 인물에 대한 서술만 했다면
이 책은 절대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박서보에게 있어 중요한 사건과 주요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내가 박서보의 인물 옆에 나란히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책은 흡입력이 좋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
살면서 나는 특별한 무언가에 많은 열정을 쏟은 적이 있었나?
_ 하루도 빠짐없이, 2시간의 잠만 자면서, 나의 밥값을 아껴가면서...
그렇게 열정에 빠져 수많은 그림을 그리고 연구를 해본 적이 있었나?
현재 80대의 노인이 된 박서보는 지금까지도
움직이기 힘든 몸을 이끌고 대작을 그리는 중이다.
젊을 때는 돈이 없어 비싼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구해
그림을 그렸고, 음식 대신 담배를 기호식품 삼아 끼니를 걸렀다.
6.25 전쟁을 겪으며 큰 트라우마가 남았고
전쟁 후 각박한 세상 때문에 계속해서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한시도 거르지 않았다.
한국의 미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보다도 강했고,
하루라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사람인 것 같았다.
특히 박서보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환경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그림을 발전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발전은 아무리 주변과 상관없다고 주장해도,
우리는 결국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 주변을 각자만의 방법으로 녹여내고 있을 것이다.
박서보가 사회적으로 남긴 업적과는 다르게
가장이나 아버지, 남편의 도리와는 꽤 멀었던 것 같다.
책을 읽어가며 정말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박서보는 한국의 미술 영역을 크게 확장시키고 발전하는 것을
큰 목표로 삼았고, 그 중요성에 가족이 뒤로 밀려나지 않았나 싶었다.
현재 박서보는 나이가 많아지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 연민 등의
큰 변화를 겪고 받아들이고 있다.
보통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지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서보의 딸인 박승숙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대한 아버지는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변함없이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자기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처럼
세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_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_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
이러한 박서보의 가치관처럼, 사람의 인생은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고 받아들여
저 밑으로 추락하기도 해보고,
바닥을 치고 다시 솟아오르기도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