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밀양 영화를 보고..너무 가슴 아플까봐 보기를 꺼려했지만, 볼만한 영화가 없는 관계로...그러나 뜻밖에, 그리고 기대에 못미치게 그냥 그랬던 영화 . 송강호는 정말(늘 그렇듯) 휼륭했지만, 전도연이 역시나(늘 그렇듯)2% 부족한 몰입을 보여준...그리하여 날카롭게 갈아 놓은 칼날이 어설프게 찌르고 들어오는 듯한...피를 철철 흘리고 그만큼 아파야했는데, 그냥 어~어~어~하다만 영화..를 보고, 원작을 봐야겠다 싶었다.

원작도..기대와는 달랐다.

음..이청준이라는 작가가 그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청준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동화책-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레란다 - 치매라는 소재로 치매로 죽어가는 할머니와 그를 보살피는 가족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그러나 아름다운 이면을 보여준, 소설(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허구를 담는 것이 소설이라는데, 그 허구가 현실을 보는 다른 관점을 가져다 주고 그리하여 현실에 반영되는, 역사성을 가지는 것이 진정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의 '역사성(혹은 그 가능성)'을 지니지 못하는 것들은 소설이라 분류되지만, 그저 이야기일뿐이라고 생각한다.)의 귀감이라 할만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에 감동하여 읽은 축제 역시 죽은이의 저승가는 길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참 활기차게 그려내어 이또한 그가 훌륭한 작가임을 보여주었다.

앞서 읽은 두 책에서 본 이청준 작가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이 벌레이야기도 그의 글답다고 해야하고 그를 이렇게나 인정하고 훌륭하게 보아온 나라면 이 책도 감탄해야했다. 그러나 이책은 앞서 영화도 보고, 영화 이전에 기대와 편견도 컷던 탓일까..실망스러웠다.(내가 기대했던건 '처절함-아들을 잃은 어미의 처절한 고통, 신의 뜻에 배반 당한 처절한 인간의 고뇌'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청준은 고통으로 몸을 비틀고 보기에도 섬뜩한 붉은 피가 낭자한...그런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아니다.. 자식을 비극적으로 보낸 어머니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용서라는 주제를 내놓고 신과 인간..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가슴을 쥐어 뜯으며 고뇌하다 결국 자살하고만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분위기는  담담하다. 신의 대변인인 김집사(?)아주머니도 고뇌하는 인간의 대변인인 아내도 살해당한 아버지라는 제3자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제3자는 쉽게 흥분하지도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고 양자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하고 양자의 입장을 이해하여 논리적으로 풀어보려 하고 간간이 자신의 인간적 모습을 추임새처럼 넣고 있다

용서라는 주제를 좀더 깊이 있게 다뤘음 했다. 김혜남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 이란 책에서 용서의 의미를 발견했는데, 용서란 상대를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떠나보내는 것, 그러한 작업(과정)이다. 용서가 미덕되는 것은 '내'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즉 용서란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내가 나를 내 행동과 의지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에 대해 품고 있던 이상을 접고(우린 흔히, 그래도 용서를 한다고 할때 상대에 대해서는 좀 쉽다. 그에대한 기대,이상을 접는 것은 좀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럴수 있었겠다..그리 생각하기 쉽지만, 자신에 대한 이상을 접는 것은 너무도 어려여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그때 내가 이렇게 했다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다고하며 자신을 쉽게 놓아주지 못한다. 특히 자신에게 엄격한 도덕주의자가 이런 상황에 빠지기 쉽지..나처럼...)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현실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한다함은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모두 나의 일임을 인정하고(결과를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 느낌, 행동들이 모두 나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밀양으로 돌아가서 아내는 현실(결과)를 인정하지 못했다. 교회라는 하느님이라는 비현실의 세계로 도피하여 그럭 자신을 추스리고는 어설픈 용서, 인간답지 못한 신의 영역에 범하여 상대방을 사랑하려 시도한다. 당연 안되지..그녀는 신이 먼저 그를 용서했다며 신께 용서받은 그를 자신이 어찌 용서할 수 있느냐며 절망한다. 그녀의 새로운 절망은 이해할 수 있다. 배신감..그리고 좌절...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김혜남이라는 정신분석학자의 의견에 비추어 볼때 아내는 자신과 상대에 대해 이상,기대를 접지 못했고 현실과 그속에 서있는 적나라한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런척 하고 있었을 뿐...그러다 범인이라는 너무도 적나라하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현실'을 마주하자 그 모든 허울이 무너져내려 주저앉아버린것이다. 거기서 일어나지못하고 자살을 택한것이고...아이가 죽어 돌아온날, 그 현실로부터 자신을 일으켜세우지 못하고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어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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