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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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우울증때문에 지쳐가고있을때 학교상담실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은적이 있었다.

모교출신 의사이자 그후 병원장도 했던 그 여자는 그떄 별거 아닌걸로 불렀다면서 온갖 욕설, 악담, 저주, 비난을 두시간동안 쏟아부은후 혼자 고치라며 먼저 나가버렸다.

그후 나의 우울증과 열등감은 더욱 심해져서 몇년동안 극도의 대인공포와 신경쇠약을 겪어야했다.

내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했기에...

한참 세월이 지난후 유쾌 상쾌 발랄한 이라부의 치료과정을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내가 그때 이라부같은 사람한테 치료를 받았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면서...중년의 나이에 엄마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마보이,늘어진 턱살과 뱃살, 벗겨진 이마, 얼굴에 흐르는 개기름, 손으로 쓸어내릴때마다 우수수 쏟아지는 비듬, 무리하게 짧은 다리를 꼬아대거나 코를 후비는 행동은 ’정신과의사’라는 권위적이고 딱딱한 지위가 주는 거부감을 없애 환자와 의사와의 거리를 제로로 만든다. 

 

남들이 보기에 사소한 문제가 다른이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될수있지만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이상 이해하지 못한다. 그 사소한 문제는 무의식의 세계에 기반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그 깊고긴 무의식의 심연에 뛰어들 용기와 배짱이 없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태아일떄 혹인 선조대대로 내려오는 태고적부터 삶의 궤적을 무의식속에 층층이 간직하며 개인의 역사를 그려간다. 현재 나에게 보여지는 신경증의 표출은 땅속에 엃혀있는 포도넝쿨처럼 무의식의 세계에서 잘못 뿌리내린 하나가 삶의 흐름에 제동을 걸면서 왜곡된 형태로 의식에 표출된 결과다.

따라서 신경증을 치료하기 위해선 백지와 같은 하얀 옷을 걸치고 무의식에 세계로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때론 생각하고싶지 않은 고통스런 작업일수있으나 곪아터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지 않을수없다.

 

이라부는 그 작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철저히 자신의 옷을 벗어던지고 환자와 같은 처지로 내려와 어린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욕구그대로 행동한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의식 세계의 허상을 뒤쫓고 있을때 이라부는 과감히 그의 행동에 반기를 들고 정곡을 찌르고 무의식세계로의 여행을 감행한다.

마치 그는 환자의 증세를 미리 알고있는 것처럼 행동하여 하늘이 보낸 천사가 이닐까하는 신비감마저 풍긴다.

 아내의 부정으로 이혼당해 지속발기증세를 보이는 회사원앞에선 바람피운 전부인과 물건던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점잖은 식품회사주임의 신분으로 분출하지 못했던 동물적인 분노와 욕구를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여기며 수치심과 모욕감을 안겨준 의사에게 여과없이 표출시킨다.

 스토커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모델(일종의 공주병)앞에선 불가능한 용모를 가지고 액션배우 오디션에 응모하여 ’세상에 어쩜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 다 있담’하는 부러움을 선사한다.

 

운동중독에 걸린 카즈오와 같이 수영을 하면서 아예 다섯시간 내내 수영하고 싶다면서 한밤중에 숨어들어 공구로 유리창을 부수는 행동은 어떻고...

 

중학시절 왕따의 아픔을 겪은후 관계에서 소외당하지 않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휴대폰 증독에 걸린 고등학생 앞에서 이라부는 당당하고 태연하게 자신은 친구가 없다고 인정한다.  

 

한술더떠 마유미는 이상형을 묻자

"친구없는 놈. 떼거리로 노는거, 나 안좋아하거든."라고 대답한다.

어차피 인생의 절반은 혼자있는 시간이다.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두려워하면 같이 있는 시간도 즐기지 못한다.

환자의 증세와 똑같은 아니 더한 행동을 함으로써 편하게 사는 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무의식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는 보여준게 아닐까. 

 

지금도 이라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너만 못난게 아니야..나도 너의 결점을 가지고 있어...자, 보이지?...어차피 잘나봤자 다 거기서 가기야...

 

이번 기회에 나의 왜곡되고 억압된 감정과 이상증후를 느끼며 퀴퀴한 이라부의 지하세계로 걸어가 육체파 간호사의 비타민 주사 한방 맞고 이라부의 특급처방을 받고싶다.

그리고 젊은 시절 내내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며 욕설과 악담을 선사해준 그 정신과 의사를( 그 여잔 날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용서할 아량을 갖게될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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