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봐리 부인 홍신 엘리트 북스 35
G.플로베르 지음, 김남제 옮김 / 홍신문화사 / 1993년 3월
평점 :
절판


보바리 부인 즉 엠마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삼류 연애소설을 많이 읽은 탓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남자는 모름지기 뭐든지 알고 있어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며 불타는 정열, 세련된 생활, 비밀스런 곳으로 인도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의사인 남편 샤를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소망도 없고, 근심걱정 없이 멍청하게 있는 우둔한 사내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돌발하진 않았지만 가능했을 법한 우연한 사건이나 세련된 생활,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을 상상한다.
수녀원 친구들은 미남자에 재기발랄하고 고상하고 매력적인 남자와 결혼해 도회지에 살며 길거리소음, 떠들석한 극장, 밝은 무도장에서 마음이 부풀고 관능이 짜릿해지는 생활을 하고 있을 텐데 자신은 채광창이 북쪽에 나있는 헛간처럼 썰렁하고 권태가 구석구석까지 거미줄친 시골에서 평범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모든 원인은 그녀가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책에서 자기중심적 이미지에 맞는 부분만 끌어들인게 문제다.
화려한 도회지생활과 로맨틱한 연애를 동경하던중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접근한 레옹과 로돌프는 그녀와 불꽃같은 연애를 펼치다가 그녀가 가장 그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배신한다.

레옹은 유약하고 평범하며 인색하고 여자보다 활력이 없는 소심쟁이였고 34세의 독신남 로돌프는 비열하고 이기적인 바람둥이였다.

결국 엠마는 엄청난 빚을 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비소를 먹고 자살한다. 그녀가 자살한건 빚의 변제나 압류에 대한 공포 때문이 아니다.
믿었던 연인들로부터 배신당한 슬픔과 절망, 그리고 이상이 산산이 부서지고 조각만 남은 초라한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돌프는 엠마가 돈을 꾸러 왔을 때 은으로 장식한 총이나 대모갑이 박힌 탁상시계를 진열해 놓고서도 3000프랑이 아까와 쌀쌀맞게 거절한다.
그녀의 매장날 레옹과 로돌프는 그녀 생각은 까맣게 잊은채 피곤에 지쳐 잠에 든다.

오히려 로돌프는 뻔뻔스럽게도 샤를을 만난 자리에서 선술집으로 맥주나 마시러 가자고 권한다.

우둔한 샤를은 아내가 죽은후 숨겨두었던 편지들을 읽고서야 아내의 파란만장한 애정행각을 눈치채고 절망에 빠져 원인을 알 수 없는 사인으로 쓰러져 죽는다.

돈과 권력만을 쫓는 현실주의 약제사 오메만이 행운을 움켜쥐고 승승장구하여 명예훈장을 탄다.

프랑스혁명이후 두드러진 부르조아 계층을 대변하는 오메와 고리대금업자 뢰뢰는 부르조아적 속물근성을 지닌 자로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엠마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엠마가 타고난 감상벽에 빠져 흘리고만 재산을 주머니속까지 철저히 갈취하는 흡혈귀같은 존재들이다.

엠마가 타락한 원인을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인 개인적 취향이나 일반적 여성의 속성탓임을 부인하는 여성학자들은 여성이 소외된 19세기 사회현실상 엠마의 선택이 여성의 유일한 해방구임을 강조하여 타락의 원인을 당시 사회제도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요즘도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꿈꾸는 여성들이 있기에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부추키는 '프리티 우먼'이나 불같은 로맨스를 그린 '타이타닉'이 인기를 얻는게 아닐까.

수단이나 방식의 차이일뿐 예나 지금이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허영'이 가져다주는 자기만족과 쾌감을 추구하는건 같은 것 같다.
대화도중 어려운 철학용어 한구절이나 우아한 문학 또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문 한 소절쯤은 미리 준비해서 대화 틈틈이 써먹어야 하며 남성은 고급승용차와 넓은 집평수, 외제 양복이 주는 부러운 시선, 타인이 이해못할 전문용어와 외국어 남발이 주는 지적 허영을 즐기며 여성은 가꾸지 않아도 타고난 미모가 가져다주는 뭇남성들의 관심, 분위기있는 로맨스로 삼류연애소설같은 값싼 허영을 즐긴다.

하지만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나 여자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기꺼이 얼어죽는 타이타닉의 잭은 현대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듯 엠마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남자는 어디에도 없었고 곤경에 빠진 그녀 앞에선 철저한 냉정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인간의 변덕과 사악함이란...허영을 즐기는 사람뒤엔 허영을 주는 매개체가 없어졌을 때 남는 공허감과 차가이 등돌리는 사람들의 뒷모습만 남을 뿐이다. 엠마는 레옹이나 로돌프를 진정으로 사랑한게 아니라 소설속에 나오는 매력적인 주인공과 똑같은 체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영화처럼 사는 여자'라는 광고카피나 드라마속에서 주인공이 착용한 액세서리의 유행은 엠마의 허영심을 이용해 재산을 갈취하는 오메나 뢰뢰와 같이 현대인의 신 감각주의를 부추켜 이익을 얻는 상업주의의 한 형태이다. 21세기 상업자본주의는 현대판 보바리 부인을 양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낭만이나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이기심과 허영만이 존재할까? 필요할 때만 미소와 칭찬과 존경을 보이는 사회속에서의 성공, 출세는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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