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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지음 / 난다 / 2021년 2월
평점 :
영화감독 봉준호, 하면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그의 성과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내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보이는 이미지나 영상물에 익숙하기보다 활자에 더 기대어 사는 편인 사람인 나는 그의 소식을 종종 인터넷 기사로 접하곤 했다. 그가 2019년 <기생충>으로 이루어낸 업적은 이루말할 수 없이 대단했고, 그 소식을 활자로 받아들인 나는 그의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영화에 대한 내 감상은 감정적 언어가 압도적이었다.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평론을 곧바로 찾아 읽었고, 그 후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렴풋이 이해했던 것 같다. 영화 속 뒤엉킨 언어를 그제야 읽어낸 것이다.
이 책은 1993년의 <백색인>부터 최근의 <기생충>까지의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사전처럼 정의한 책이다. 다양한 범주로 그의 영화들을 재구성해비교・분석한 이 책은 배우, 촬영 기법, 연출 방식, 인물들의 특징 등을 통해 봉준호의 영화를 설명한다.
영상이나 이미지는 여러 가지 오브제를 한데모아 교차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텍스트는 하나로 응축된 것들을 다시 여러 가지로 풀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언어’의 특징을 고스란히 반영한 책이다. 봉준호 감독의 교차점을 오랜 시간 가져온 애정을 통해 고찰해 자기만의 방식(언어)로 섬세히 풀어냈다. 그의 영화 속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파헤치기도 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존재를 탐구하기도 하며, 특정 사물이나 인물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대타자나 헤테로토피아, 에피스메테 등의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이론이 몇 차례에 걸쳐 풀어져 서술되어 있으며, 그 덕분에 영화 이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 또한 쉽게 길의 갈래에 들어설 수 있다.
하나의 대상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렇게 방대한 설명을 풀어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봉준호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저자의애정을 절절히 느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깃든 책인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 될 것이다. 다소 어려울 순있겠으나 친절한 설명이 여러 차례 덧붙여서 감독의 작품을 모두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 같은 초심자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그의 작품을 먼저 본 뒤 읽는 게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세계 안에서 무엇을 볼까를 질문한다. 눈앞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본다고 해도 그것이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유일한 방식도 아니다. 오히려 보이는 것은 자주 은폐되며, 그것을 보았다고 말해도 예언자 카산드라처럼 사람들은 쉽사리 믿지 않기도 한다.(P. 108)
우리는 현실 자체로 말하기 어려운 순간을 자주 직면한다. 그럴 때 이야기가 창작된다. 우리는 무수한 이야기를 신화로, 우화로, 동화로 부른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잠재한, 현실을 각성하는 변화의 서사다.(P. 182)
이처럼 진실을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나의 사실이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을 구성하는 것은 사실의 내용보다는 부여된 가치의 문제이며, 정치 권력은 물론, 그 권련을 형성하는 여론이나 미디어가 이러한 가치 부여에 일조한다.(P.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