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서양사는 끊임없는 신과 인간의 관계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르네상스와 함께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인간 스스로 많은 문명을 발전시켜왔고, 그것은 눈부신 과학발전과 함께 했었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신의 자리는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없어지지 않고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왔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그 대상을 다양한 형태의 누군가로 대체해왔었다. 신은 없지만 그 보이지 않는 자리에 다양한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저자들은 '광신주의'와 '다신주의'라 보고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단테의 [신곡],

허먼 멜빌의 [모비딕] 등에서 보통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 가치를 찾아내고 있었다. 이 책은 위에 열거된 책들을 이미 읽었거나 아직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속에서 우리가 찾지 못한 가치들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또한 반대로 이 책을 먼저 읽었을 때 위에 열거된 책을 나중에 읽을 경우 순수한 독서 감상에 따른 개인의 판단을 저해하는 요소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서양 고전을 읽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으로는 괜찮을 듯 싶다. 단 서양사는 끊임 없이 신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읽기 시작해야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서양고전 읽기에서 우리는 그 속에서 '빛나는 무엇'인가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 이라 생각된다.


1장 선택의 짐에서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도스토에프스키의 말은 모든 것을 인간 스스로 책임져야함을 의미했었다. 사고현장에서 주저없이 타인을 구하는 사람을 분석하면서, 일상에서 나타나는 슈퍼맨, 스포츠 영웅, 대중스타 등 스스로 어떠한 상황에 주저없이 맞서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의 허무주의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책 서문에서 밝히듯 저자들은 평범한 교양을 갖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싶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었다. 첫 도입부는 이들의 설명이 맞다. 그러나 2장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천재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아주 생소한 인물이다. 여기서 부터 읽기가 좀 불편해진다. 월리스란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쭉 나열한다. 미국의 천재적인 소설가 46세에 자살한 소설가, 20년간 우을증 치료를 받은 환자, 그가 왜 자살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가? 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분석을 하고 있다. 월러스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스스로 의미를 생성해야 하는 오늘날의 반복적인 삶에서도 끝까지 삶의 가치를 추구했고, 그러한 과제로부터 주의를 빼앗고 정신을 중독시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하려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벗어나려고 했었던 그 과제가 결국 자살의 원인이 된다. 실존하는 과동한 짐은 허무주의를 부른다는 것

책 읽기가 느린 나에게도 이 책은 술술 읽혀갔다. 왜일까? 그 다음의 궁금증이 계속 생긴 이유였었다 

3장 부터 다시 재밌어 진다. 신들로 가득한 세상은 호메르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찾아낸다. 특히 신들이 정해주는 '정조'의 개념에 대한 여러 의미들...

흥미로운 부분은 현대판 오디세우스로 영화 '펄프픽션'을 설명하고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고교시절에 아주 인상깊게 본 영화인데 저자들은 거기서 오디세우스의 면을 보고 있다. 고전 뿐 아니라 영화까지ㅎ

4장은 유일신의 등장- 기독교가 바꿔놓은 삶의 가치를 설명함에 있어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는 분노와 복수의 시대가 예수의 바울의 등장으로 신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으로 수렴될 때만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잣대로 본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은 욕망=신의사랑

5장에서는 단테의 신곡을 분석한다. 스무살에 보았던 단테의 신곡은 내게 너무나 어려웠었다. 잘 이해도 되지 않았고 서른 살에 다시 읽어도 그랬다. 유명한 미술작품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지옥 문 위에서 고통받고 있는 인간들을 보고 고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 또한 그것이 단테의 신곡의 일부분이라는 내용을 듣고 [신곡]을 읽었으나 너무 장황하고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으로 악마의 특징이 인간의 미덕으로 변하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마르틴루터, 데카르트, 칸트에 이르는 '자율성'이 인간의 가장 존엄한 특징으로 재 탄생한다. 결국 칸트는 인간이란? 스스로 세운 도덕 법칙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평가될 수 있는 '자율적 주체'가 된다고 했다.

6장은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에서는 종교적인 범위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자립하려는 군상들을 보여주는 예시로 허먼멜빌의 [모비딕]이 등장한다. 결국 이것은 인간과(개인)과 신의 싸움으로 해석하고 있다.

방대한 스케일의 [모비딕]에서 이러한 내용을 분석하고 그곳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려하고 있었다. 아직 [모비딕]을 읽지 않았으나 (그래서 오늘 허먼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있다]), 정말 이들의 해석대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모비딕]을 읽고 싶게 만들고 있다.^^

올바르게 살기 위한 규범에 일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고금을 통해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아크라시아akrasia 또는 의지의 허약함이라고 불렀다.
- p 37

도대체 어떻게 성스러움을 다시 불러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저자들이 제출한 답은 다신주의polythesim라는 것이다. 다신주의라는 말에는 다시 두가지 강조점이 있다. 첫째, 다多-신주의라는 말에는 전체주의, 환원주의에 대한 경계의 의미가 담겨있다. 서양 전통철학과 유대-기독교적 전통은 일신주의monotheism 편향을 가지고 있었다.
- p415 옮긴이 해설 中

다-‘신神‘ 주의라는 말에는 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다신주의라는 말의 두 의미는 모두 인간 중심주의, 주체 중심주의를 경계하고 잇다.그러면서 다신주의는 타자성을 소중히 살리려고 한다. 의미는 인간 혼자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 p416 옮긴이 해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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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7-02-02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판 오딧세이로 펄프픽션을 설명해준다라... 궁금하네요.

보쌈 2017-02-03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책속에 그렇게 설명되어있네요 오딧세이를 펄프픽션과 연결해서 설명한 부분에서... 역시 철학자들은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것들을 찾아내는구나 하고 감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