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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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건내가 아니라 저쪽이다.사는건 죽는것보다 낫다.용기있는 건 쟤가 아니라 나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주워 담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살고 싶다는 저 애의 물음에 순순이 고개를 끄덕이느니 그냥 죽는게 낫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수정은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P.28

이 책 <단명소녀 투쟁기>는 제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이다. 박지리? 처음 듣는 이름이다. 처음에는 '박경리를 잘못 봤나?' 했다. '근데 박경리작가를 기념하는 상을 받았다면 1회는 아닐텐데? 박경리작가가 돌아간지가 꽤 돼지 않았을까?'하며 궁금해졌다.

박지리 작가는 2010년 「합체」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맨홀>, <양춘단 대학탐방기>,<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번외>,<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세븐틴 세븐틴>(공저) 일곱 작품을 출간했고, 2016년 31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지리문학상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글쓰기로 인간 본질과 우리 사회를 깊이 천착해 한국 문단에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박자리 작가의 뜻을 잇고자 사계절출판사에서 2020년 시작한 문학상 공모입니다.

박지리문학상, 128쪽

책표지가 강렬합니다. 표지속에 있는 소녀의 표정이 너무 강렬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림을 보려는게 아닌데요^^. 책을 읽고 싶었는데 표지를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홀딱 빠지고 말았습니다. 주인공 소녀의 시선이 배경으로 있는 초록잎과 남색,검은색들과 어우려져 도대체 알 수 없는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이 책을 쓴 현호정작가의 말을 들어볼까요?

돌이켜 보면 늘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와 버린 느낌으로 살아온 것 같다.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어디에 착하게 서 있거나,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어색한 얼굴로 걸어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이들과 마주치면 머슥하게 인사하고, 잠시 웃음을 주고받고, 이 공간의 인테리어나 흘러나오는 음악에 대해서 같이 흉을 좀 보다가, 그나마 한적한 곳을 찾아 나란히 서 있었다.

...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기면 죽기 싫다는 마음으로, 순순히 죽어 줄 수 없다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마음으로 지내보려고 한다. 솔지히 많이 피곤하고 옷도 불편한데, 또 곰곰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정말로 초대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애초에 여기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수상소감. 2021년 봄, 호정

책은 단편이다. 독특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스무살된 구수정이 점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본다. 그리고 점쟁이가 말한다.

야, 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수정은 한참만에 대답한다

싫다면요?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설화를 알아야 되는데,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자

<단명소녀 투쟁기>는 한국 고전 서사의 유형들 중 하나인 연명담 또는 연명설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연명담은 말 그대로 주인공이 목숨의 햇수를 늘려 오래 사는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성년 남성이 아니라 열아홉 살 여성 구수정이다. 한국에서 열아홉 살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연령이다. 우선 구수정의 이름에서 엿보이듯 민간의 통념에 따르면 어려운 고비나 액운이 한꺼번에 몰린다는 아홉수의 나이다.

...

수정은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수하기 위해 미성년의 생존이 경시되는 세계에서 미셩년의 죽음이야말로 짌거에 어긋난다고 전복적으로 인식한다. 죽음의 부당함에 대해 개인을 넘어 동세대 미성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 전체를 향해 고발하는 것이다.

나는 열아홉 살인데, 내년이 되기 전 죽을 운명이랬어.

스무 살은 죽을 나이가 아니야. 질서상 맞지 않아

59쪽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 참 슬픈 것이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기도 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기도 한다. 죽음을 생각해보면 나에 대한 연민과 후회, 알 수 없는 비참함과 회한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기도 한다. '왜 죽어야 할까?' 그래서일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또 슬프고, 그리고 참아야 되는 눈물이 덩그러니 뜬 눈아래로 흘러내린다.

참아야 한다. 보이지 말아야 한다. 입술을 깨물고 보이지 말아야 한다. 없었던 것처럼 그 슬픔들을 나에게서 몰아내야 한다. 누가 나에게 이런 슬픈 감정들을 가져다 주었을까? 나는 견디고 버틸 수 있을까? 나 혼자서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도움없이 나를 온전히 이끌고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채울 수 있을까?

주인공 구수정을 떠올리며, 삶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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