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로켓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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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오랫동안 숲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미로의 출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좀 더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럼으로써 도피로 점철된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 로켓엔진 전문가잖아. 설마 데이코쿠중공업의 연구자들이 겁나?" 쓰쿠다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아무도 없는 거실 한곳에 시선을 던졌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인간사 세옹지마같다. 무대는 회사다. 갑을관계의 회사가 등장하고, 회사의 자금줄을 담당하고 있는 은행이 있다. 대기업에게 중소기업은 을인 약자일 수 밖에 없고, 은행은 약자인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의 편에 있다.

힘들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기업의 양보는 없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기술을 싼 값에 사들이기 위해서 비열하지만 약샅빠른 방법으로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여온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정과 의리로 똘똘 뭉치는 작지만 강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다. 아무리 험난한 외압이 있더라도 회사를 믿고 동료를 믿는다면 솟아날 기회는 온다는 것.

어쩌면 이케이도준의 소설이 주는 일관성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들. 잃어버려서도 안되는 것들

약자들의 작지만 함께하는 힘.

어려울수록 단단해지는 동료들과의 믿음

기술력 하나만큼 인정받아온 변두리로켓 회사인 쓰쿠다제작소. 하지만 대형로켓엔진 기술특허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 싼 값에 가로채려는 대기업인 나카시마공업의 전략을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로켓발사의 실패로 연구소에서 혼자서 모든 책임을 떠안고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쓰쿠다에게는 쉽지 않은 상대인데요.

세상은 의외로 정의롭다. 그리고 약자를 응원하는 목소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살 만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살 만한 세상이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뿐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야 한다.

시선과 관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은 온데간데 없고, 돈벌이나 화풀이 대상만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도쿄경제신문》의 특집기사다.

대기업의 논리, 물불 가리지 않는 수익지상주의. 나카시마공업을 마치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소국을 유린하는 대국처럼 표현해 놓았다. 기업 이미지 훼손이 이만저만 아니다.

취재때 미타가 자신만만하게 밝힌 자신의 생각과 나카시마공업의 전략도 중소기업의 성의와 진심을 짓밟는 교만한 대기업 마인드의 예시로 인용됐다.

하지만 인생사 세옹지마라고, 쓰쿠다제작소 내부에도 작은 균열들이 발생하는데요. 가장 안 좋은 내부갈등인데요.

영업부와 기술개발부는 원래 마음이 안 맞는다. 영어부 입장과 기술개발부는 돈 잡아먹는 귀신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용적인 기술개발에 특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연구 범위를 굳이 좁히지 않고 자유로이 놔둔 건 오로지 쓰쿠다의 뜻이었다.

이케이도준의 소설은 셀러리맨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보여주는 최고의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거의 모든 소설의 플롯이 비슷한 듯 하지만, 읽을 때마다 인물들간의 심리는 한 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고뇌도 있다.

쓰쿠다의 가슴속에서 예상치 못한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당시 연구자로서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자신에게 그 선택은 그저 '도피'아니었을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직원들을 위해 인한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마음속 어딘가에 스미어 있던 좌절감을 지우려던 것 아닐까. 남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믿음으로 진실에서 눈을 가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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