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경제학 - 맨큐의 경제학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티븐 A. 마글린 지음, 윤태경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 개발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개발'이란 너무도 흔히 듣는 말이지만, 정작 이런 질문을 던지고 고민한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고자 25년간 꾸준히 연구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연구 과정에서 자연스레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이런 상실을 유발하는 경제 개발 과정에서 경제학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공동체다.

말 소중한 책을 받았다. 정확히 527페이지다, 두꺼운 분량이다.

이런 책을 대학교출판부에서 출판하는 것은 경제의 논리로 이해될 수 있을까?^^

당연히 경제의 논리로 바라보면 전혀 효용성이 없는 행동이다. 왜?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소중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다.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통찰, 깨달음이다.

☆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책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해 원제 ' The Dismal Science(우울한 과학)'를 '공동체 경제학'으로 바꾸었음(편집자주)

이 책을 쓴 목적 중 하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강경한 경제학자라도 마음속에 예나와 같은 인식이 남아있으리라 본다. 심지어 나는 경제학 원리에만 의존하는 사회는 몇 분도 지속할 수없다고 믿는다. 지난 4세기에 걸쳐 근대 서구사회가 경제학 원리에만 의존했더라면 오늘날까지 지속되지 못 했을 것이다.

85쪽, 3장 근대성의 최첨단을 달리는 학문, 경제학

또한 경제학에서 몇 가지 신화-개인주의, 근대 지식 이데올로기, 국민, 무한한 욕구-를 검토하는 부분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면서도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점을 남겨주기도 했다.

특히, 인간이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기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고 가정하는 부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사람들이 더 많이 원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경제에서 무한한 욕구를 추구해도 되냐 안 되냐다.

'무한한 욕구'개념에 관한 진짜 이슈

어쩌면 이 부분은 분명히 동서양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이제는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공동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없다. 서구의 근대주의와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저자인 스티븐 마글린 교수는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고 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경제학 자체, 즉 경제학이 가정하는 것들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자신은 중립적인 관찰자가 아니라른 것,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다'라고 기계적 중립을 지켜가며 서술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밌다. 당신이 또 다른 생각과 방향을 그리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지도 모른다.

시장은 다수의 관심이 쏠린 종목에 투자를 유도한다. 시장 가격은 지식과 정보의 합의를 반영한다.

반면, 내 견해는 매우 단순하다. 시장의 정보처리 능력에 대한 이론적 가능성이 어떻든 시장가격은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ㅇ게ㅔ는 다수의관심이 쏠린 종목에 투자할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다.

100쪽

우리의 지구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방송을 보면서 지구가 겪어 있는 환경파괴와 오염으로 인한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 그러면 경제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과연 경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한 심판의 날은 언제 올까?

낙관주의자들은 기술적 해법이 곧 개발돼 문제에 대처할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비관주의자는 미래를 러시안룰렛 게임으로 본다. 누구의 전망이 맞을까?

우리는 여전히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중 누구의 주장을 따를지 누구의 전망이 맞을지에 따라 4개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우리가 어떤 이익을 볼지 논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결국 비관주의자의 조언을 따라 검소하게 사는 편이 낫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중 누구의 전망이 맞든 우리가 소비를 줄이면 전체 후생을 늘릴 수 있다. 설령 전망이 틀리더라도 어쨌든 옳은 행동을 하면 이익을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