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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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자신의 관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 데는, 관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서는 은퇴한 토목기사로서 목공 일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 일을 해나가면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만큼 아버지는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저자의 롤 모델이자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버지를 묘사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숱한 문장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361쪽, 옮긴이의 말

요래저래 바쁜 일들이 많았다. 신경쓸 일도 가끔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은데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요즘이다.

요 책도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운 내용이겠구나 싶었다.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저자의 서사같은 긴 설명체 문장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대한 설명, 가조들의 특징, 집안내력, 지금의 모습들을 주욱~~~~~ 설명하듯이 쓰고 있지만, 문장들이 길어서 그런지 몰라도 몰입되다가도 딴 생각으로 빠지지가 십상이었다.

그래도 원래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봤고, 마지막에야 옮긴이가 설명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관을 만드는 내용의 글은 흔치 않다. 아니 없을 것 같다.

그래서 < 왜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관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버지가 워낙 목공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우연찮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가벼운 얘기로 시작되었다. 집에서 손수 만든 관을 장례업자들이 받아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정말 그걸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짐금 해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은 구글 검색 결과를 들고 여기 서 있게 되었다.

25쪽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사실 아버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립다는 표현도 맞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에는 그 대상과의 추억이 있어서 그림움의 마음과 정이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그림움이 정확히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저가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따르고 존경하는 것 같다.

그런 아버지의 삶과 생활속의 모습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있는 동안의 순간순간을 아버지와의 시간을 만들어가는데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책은 아버지와의 내용들이 많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도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 존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은 어머니가 먼저 사망하게 되면서 연이어서 저자를 떠나게 된다. 평생 소중한 관계로 지냈던 친구인 존도 어머니가 사망한 1년 뒤에 사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아버지도 폐암 진단을 받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여러 달을 보내는 동안 나느 많은 것들에 대해서, 특히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게 되자 죽음의 개념이 덜 추상적이고 한결 현실적인 개념이 된 것이었다.

날카로운 고통 역시 이 거대한 수수께끼에 관해 새로이 명료한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촉박한 문제가 되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절화벨이 울릴 때마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저자는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글을 쓰고 있다.

당연히 책의 내용들 중에는 한없이 담고 싶은 글들이 많다.

아버지의 헛간에서 목공을 하는 것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142 나는 목재에 대해서는 늘 그와 같은 식으로 생각해왔다. 주로 아버지의 작업장과 나 자신의 작업장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목재를 열심히 살펴보고, 구분하고, 두드려보고, 손으로 무게를 재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엄지손톱으로 밀도를 시험해보고,심지어 가끔 혀로 맛을 보기도 했다.

친구 존은 저자가 태어난 애크런이라는 도시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친구는 미술을 공부해서 서로 항상 의지하면 살아왔다.

p.156 중년의 우정은 흔히 이런식이다. 우정이 빠져나가고 또 빠져나가서 결국 "우린 곧 만나야 해"라고 내뱉은 말이 그런 우정은 소멸된다는 진실을 가리는 불편한 광막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자신의 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관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초고를 아버지로 하여금 읽게 한다. 아버지는 책이 출판되고 3일 뒤에 돌아가신다.

나는 아버지와 추억이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배운것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애들의 아빠가 되어서 항상 나는 아빠로서 잘 하고 있나 의문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 마디로 아버지에 대한 롤모델이 없었다.

물론 모델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또 그 모델이 내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느낀 것처럼 소중한 아버지와 아들, 아니 자식들과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 감사하다.

저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이 꼭 학습이라는 의식적인 과정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추억하는 지혜를 들어보면서 마무리한다.

물어볼 생각도 거의 하지 못했고, 대답을 부탁한 적도 없는 것에 대한 대답은 일종의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그런 식으로 나를 가르쳤다.

어머니의 충고 '외로워지지마'는 슬픔이라는 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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