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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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펼져지는 누군가의 삶을 무심코 목격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저 등장인물을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과 두려움,희망을 상상할 뿐이죠.

물론 때로는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진실에 가까이 있다고, 나에게 소명이 부여돼 있다고 말이죠. 그 소명이란 자신이 엿본 사건에 대해 그날그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면서 사건의 결말에 놀라기도 하겠죠.

그런데 만약 결말이 실망스럽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가끔은 한계를 느낀다.

사실은 한계가 아니고, 그냥 없는 능력이다.

글로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만, 적절한 단어를 선택할 수가 없다.

소설의 작가는 그렇게도 기가 막히게 딱 맞는 단어를 찾아서 딱 맞게 쓰고 있는데,

왜 나는 안될까? 당연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한 느낌도 그렇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벌써 다 표현해버려서 주인공의 표현들을 표절해야 할 판이다.

조금만 아껴 써줬으면 좋았을텐데....

단순하고 진부한 표현이지만, 미스테리 소설보다 더 미스테리하고, 로맨스소설보다 더 달달하다.

써 놓고 보니까 나름 괜찮은 표현인데요, 완전 꽝은 아닌것 같은데요^^

진짜다. 행복한 표정으로 소설속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어떤 결말이 있을지 가슴 졸이며 본 것 같다.

왜냐면 이 소설은 정말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 나오는 어떤 원고(그래서 책 제목도 '128호실의 원고')를 쓴 사람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받으실 분께,

보리바주 호텔 128호실의 포근한 더블침대 오른쪽에 있는 협탁 서랍을 열었더니 이 원고가 있더군요. 당신이 실수로 두고 가신 덕분에 저는 하늘에 감사를 드렸답니다.

주말에 아루아즈 바닷가에서 읽을 책을 챙긴다는 걸 깜빡했었거든요... 저는 책을 단 몇 페이지라도 읽지 않고는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읽는 즐거움을 빼앗기면 곧 심술쟁이가 되어버려요. 그런 제 심술에 애꿎은 나편만 볶일 뻔했는데 당신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었답니다.

13쪽. 안느 리즈 브리아르가 보내는 편지, 파리 모리용가, 2016년4월25일

소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호텔에 묵었던 한 여성(주인공 안느 리즈)은 우연찮게 서랍에서 원고를 발견하고 읽습니다.

그런데 이 원고는 보통의 소설이 아니었던 모양이죠^^. 안느는 이 원고를 쓴 작가에게 보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원고는 32년 전에 어떤 이유로 분실되었다가 이제야 작가에게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죠.

안느의 호기심과 열정은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친한 친구와 함께 이 원고가 32년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파헤치기 위한 수사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원고가 주고 받은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정말 많은 스토리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이 원고는 그냥 단순한 하나의 소설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해서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 원고를 쓴 작가(실베스트르, 50대 남성) 또한 자신의 원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삶으로 도전하는데요.

어떤 도전인지 궁금하시죠???

이 소설(128호실의 원고)은 구성은 독특하죠. 누군가에게 쓴 편지내용을 나열하는 식이죠.

원고가 지난간 사람들간의 주고받은 편지들로 설명되어지고,

독자들도 주인공들이 편지를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아서 애간장을 태울 뿐이죠^^

더 많은 내용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게 뻔합니다.

아주 새로운 형식의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잘 쓰지 않는 편지의 기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당신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린 알잖아요. 완벽한 순간이란 덧없다는 사실을요.

우리를 만나게 한 소설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일을 함께했는데, 우리에겐 무엇이 남게 되는 걸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지금의 친구들이 이방이었던 시절 담합해서 벌인 일, 그리고 그들과 나눈 편지의 흔적을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하실 건가요?

저는 그 모든 일 기억에 남기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는 거예요. 일주일 후, 혹은 일 년 후에 이 글을 읽는다면...

벨포엘에서, 2016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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