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론 -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
이한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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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부담스러운 책이다.

일을 더 잘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면 어떡하죠, 놀고 싶은데 ㅎㅎ

군주론이라고 해서 현 시대의 군주들에게 필요한 책은 아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우선 깨달아야 할 사람들은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일을 잘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부하들이 있는 조직의 장님들^^

누가될까요?

공무원들, 그리고 기업의 CEO들 정도

그리고 더 확대해보면 말만 잘 하고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해당될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을 알아보자

한국 사람들 말 잘 한다. 글도 참 잘 쓴다. 말솜씨 좋고 글재주 좋은 사람이 어느 자리에서든 주목받고 유능한 평가를 받는 세간의 흐름에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사를 보면 말만 넘쳐났지 일 잘하는 사람을 꼭 집어 찾기는 어렵다.

말 잘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일 잘 하는 사람은 안 보이는 역설의 요지경인 셈이다.

글을 시작하며, 말만 하는 선비, 일이 되게 하는 군자

저자는 공자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현재 논어등반학교 교장으로 1년 과정의 논어 읽기 강좌를 비롯한 다양한 원전 강독 강의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군자 리더십을 설파하고 있다고 한다.

군주론이니 현재를 살고 있는 평범한 평민들에게는 맞지 않는 얘기일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인식이 보여지는 부분이다. 물론 정치적인 견해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대로 군주들에게만 필요한 얘기일지라도,

평민으로 살고 있는 일반 시민, 국민들이 일을 잘~~~~ 해야 하는 군주가 일을 잘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편으로 그런 목적으로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꼭 나라를 다스리고, 회사를 경영하는 CEO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군주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면

너무 무거운 제안을 하는 거라고 생각될까??

철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신문사에서 논설위원과 문화부부장을 역임했다고 하니,

<공자사상에 주목해서 논어>를 학문적으로 연구한 수준이 꽤나 높고 전문적이다.

-이한우의 사서삼경, 논어로 논어를 풀다, 논어로 중용을 풀다, 논어로 대학을 풀다, 논어로 맹자를 풀다

요새들어서 전문적인 책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그래서 머리가 조금 복잡하고 눈이 감길 때가 있다^^

공자는 그 누구보다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에 두었으며,

일을 제대로 해내는 리더로서 군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학이>와 <이인>에 등장하는 공자의 이 두 가지 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군자의 일'에서 일은 빈틈없이 파고드는 것이고 '군자의 말'에서 말은 신중함과 차분함이 담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논어를 몇 권 읽었다.

읽을때마다 깨달음을 주는 책이어서 책상에 놓고 자주 읽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했던 것처럼 책을 펴는 일은 잘 없고, 장식품이 되버리곤 한다.

그렇게 장식품으로 있는 책이 2권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에 읽었던 논어관련 책들의 해석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 저자의 해석이지만 논리는 탄탄하다. 한편으로 이 책으로 새로운 해석을 알게 되어서 참 좋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논어>에서 학이시습(學而時習) 다음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바로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다라는 구절이다. 다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배웠고,

한번 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볼 때면 써 먹었던 적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오랜만에 만나 술자리에서 반가운 마음에 친구들에게 많이 썼었죠^^

우리가 알고 있는 뜻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원(遠)'을 해석하는데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 뜻을 같이 하는 벗이 있어 (먼 곳에 갔다가) 먼 곳으로부터 마침 돌아오니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이고,

여기서 먼 곳이란 익숙하지 않은 곳, 사사로움에서 벗어난 공적인 도리 등을 뜻한다고 한다.

좋은 문장들이다.

p.33 <논어>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할 때는 십중팔구 문(文)을 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글월 '문'이라 배웠다고 해서 '문'을 글로 옮긴 번역서들이 많다. 공자는 글 선생이 아니다....

내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논어>를 파헤치고 나서 맨 마지막에 풀어내 숙제가 바로 문(文)은 '애쓰다' '애씀''애쓰는 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리가 트였다'는 말의 의미는

글을 이해할 줄 안다고 해서 문리가 트일 수는 없으며,

결국 애써서 배우고 닦는 수기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해 실천에 옮기는 것이

곧 제대로 된 의미의 '문리가 트였다'라고 볼 수 있다.

p.97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아는 사람은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즐겨 인용하는 <위정>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확한 의미도 실은 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내는, 다시 말해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을 말한 것이다.

공자가 볼 때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조선 성종 때부터 성리학, 그중에서도 주자학이 주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말이 중시되는 것에 비해 일은 경시되었다. 그 이후 점점 일의 이치를 알아서 일을 잘 풀어가는 유자로서의 군자는 점점 퇴색하고 뒷짐을 진 채 다른 사람의 일을 평론하고 비판하는 유자로서의 선지가 조선 사회에서 주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선비는 엄밀히 말하면 군자도 아니고 소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상을 갖게 되었고, 군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갸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122쪽, 일이 되게 하는 사람 -군자와 선비

책은 지루할 때도 있다. 특히 중국의 고문에서 사례로 든 내용들은 맥락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공감해 나가면서는

뭔가 본질에 충실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을 다시 짚어가는 느낌이었다.

군자가 되고 싶거나 군자로서 역할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생각을 통해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은 아마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고 함깨 깨닫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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