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뜻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뜻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적인 표현에 더 가깝게 사용한다.
다만 조직이 우선하던 시간에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개인을 함부로 했다면,
지금은 그동안 상대방도 나자신도 챙기지 못하고 옆으로 두었던 나를 생각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즐겁게 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때가 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사회적으로 대인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마음의 병으로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 세대간의 생각차이로 인한 사회이슈들의 공론화 등 다양한 갈등문제들이 노출되면서 담론화 되었기 때문에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에도 그대로 나다.
그러나 예전의 나가 부모님들의 모습어었다면,
지금의 나는 자식들의 모습이다.
다른 건 시대가 달랐지만, 고민은 같다.
부모님들은 몰라서 자신을 챙기지 못하고 불태웠고,
자식은 알지만 시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나중심 사고를 금지한 게 맞을수도 있지만,
나를 금지했다기 보다는 우리를 너무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를 챙기지 못한 상처와 아픔도 있지만 우리는 나를 다독이기도 위로해주기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대가 이래서 나를 위해 생각하고 일해야 되는 것보다는, 그 동안 앞세대들이 먹고 살려고 챙기지 못했던 '나를 중심에 두고 사는 삶'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저자는 내 의견과 다를 수도 있지만, 살면서 느낀점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