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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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은 강력한 당파다. "선호 정당이 없다."라는 말은논리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우주의 진공 상태라도 그런 상황은불가능하다. 문제는 지지정당이 있다/없다가 아니라 무관심의 결과가 무엇인가이다. 며칠 전 투표하지 않겠다는 친구와 언쟁을 벌였는데 내가 이겼다(?). 그녀의 논리는 "보이콧도 존중해달라. 그것도 선택이고 실천이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가만 있지 말고 보이콧 운동을 조직하라. 선거 자체를 무효로만드는 현실 정치를 하라."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개인이 기본적권리마저 두려워하게 만든 권력의 승리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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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대한 욕망은 반(反)평화적이다. 평화를 둘러싼 경합이 평화다. ‘모든 이(平)가 사이좋은 상태(和)‘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불가능한 상태를 약자가 인내함으로써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평화다. 강자의 양보로 평화가 실현된 경우는 없다. 양보했더라도그것은 정의이지, 관용이나 배려가 아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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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을 구획하는 자가 이긴다. 누가 먼저 어떤 선을 긋느냐. 누가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창조하느냐. 기존 전선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내가 룰을 만들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라." 강자가 다르게생각하면 양극화를 만들고, 약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을 이롭게 한다. 기존의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다. 내가 쉽고익숙한‘ 말을 경계하는 이유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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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보다 ‘원망(願望)‘이 더 적합하다. 인간의 모든 인식은 자기이익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때로 간절히 원하면 ‘드림스 컴트루‘ 같은 인디언 서머(늦가을의 일시적 여름 날씨)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항상 있는 일은 아니다. 지성이면 감천? 하늘도 하느님도 존재하지 않는데 누가 감동하고 무엇을 베푼단 말인가.
희망은 마음의 욕망이다. 현실이 아니다. 사람은 희망 없이 못산다고 하지만 착각 없이, 이데올로기 없이, 통념 없이 못 살 뿐이다. 희망보다는 신앙을 갖는 게 낫다. 희망은 관념론이고 신앙은유물론이다. 희망에는 더 큰 욕망과 실망이 따르지만, 신앙은 겸손의 미덕과 포기의 위안을 준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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