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체공간(Personal Spa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모든 개체는 자신의 주변에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하고, 다른 개체가 그 안에 들어오면 긴장과 위협을 느낀다고 합니다. 가족과는 20센티미터, 친구와는 46센티미터, 회사 동료와는1.2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김종삼 시인의 「어부」입니다.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후회라는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돼서는 안 됩니다. 후회하는 대신 내가 저지른 잘못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반성함으로써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하는 거죠. 저 역시 잘못을 후회하고 반성할 때마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했던 말을격언처럼 되새기곤 합니다.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세상이란 건요, 행복의 모습은 대개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답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특별한고통을 짊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똑같아요. 그러니깐 당신만 무슨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요. 만약 당신만 특별히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믿는 당신 스스로가 특별히 불행한 거예요.

 아사다 지로의 소설 『파리로 가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게 된 건 영화를 통해서인데요. 바로 일본 영화 <철도원>과 우리나라 영화 <파이란>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사다 지로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도로 행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잘 그려냈습니다.
저는 무척 다양한 색깔을 지닌 그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주는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면이나 현실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파리로 가다로 돌아가면, 앞선 문장은 레프 톨스 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에 영향을 받은 것같습니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 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문장이지요. 아무튼 아사다 지로나 톨스토이의 말처럼 불행도 고통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상황도 한 사람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박연준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큰 병이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아픈 곳이 생기면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에세이 <소란>의 한 구절입니다. 시인은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미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겨내거나 없애려고 하면 도리어 부작용을 겪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병이 생길 수도 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지요. 괜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쑥 감정이 차올라 마음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무조건 억누를 필요는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화가 날 땐 화를 내고, 대신 그 이후에 마음을 돌보면 됩니다. 
그 모든 게 다 잘 겪어내고 있는 과정입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한 문장을 만나고서야 마침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인정하면 집착이 없어진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될 수 없고,
그 물건이 내 물건이 될 수 없고, 그 돈이 내 돈이 될 수 없고, 그의 재능이 나의 재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 인정하고 나니 한편으론 여유가 생겼지만 한편으론 미친 듯이 슬퍼졌다.

 공지영 작가 역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서 이런 집착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지요.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뿐이지
어느 날 큰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백창우 시인의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세>라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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