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 리버스 북 시리즈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지은 옮김, 조상영 그림 / 인간희극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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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게 끔찍할 때가 있다.
얼굴에서 점점 늘어나는 주름살을 보게 될 때,
거리를 걷다가 ‘저기요, 학생!’이 아닌 ‘저기요,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을 때,
그리고 명절 때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새삼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 끔찍하게만 느껴진다.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은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원칙,
그리고 누구나 한번 쯤 고민해봤을 문제인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단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
갓난아이로 생을 마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은 제목 그대로 독자에게 ‘흥미로운 사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의 인생에서 살펴보자면,
벤자민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결코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엄청난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의 탄생은 오히려 ‘끔찍한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 피츠제럴드는 이러한 소설 속 사건을
단순히 ‘흥미로운 사건’으로 표현함으로써
나이듦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동안’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진정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내년 2월 영화로도 개봉된다는 소식이다.
영화 '세븐'과 '파이트 클럽'에서 손발을 맞췄던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래드 피트가
벤자민 버튼으로 연기한다는 소식이다.
벌써부터 오스카 상에 노미네이트 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영화가 개봉되기 전 원작으로 먼저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제목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엉터리 제목으로
번역된 것이 조금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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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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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 시절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지 못했다.

 

내 국민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는 8살짜리 꼬마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당신의 대학입학식에 참석하셨다.
아버지께서 늦은 공부를 시작하시느라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
그리고 나와 동생 남매의 뒷바라지까지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없는 살림에 어머니는 직장생활 하고 받은 월급으로
생활비며, 아버지 학비며 저축까지 알뜰하게 꾸려오셨다.

 

당시 아버지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셨는데,
서울 개봉동의 어느 극장 사장님의 운전사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 사장님이 1980년대 말 당시 서울에서 10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분이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치곤 꽤 짭짤하셨을 거 같다.
그때 아버지 빽(?)으로 영화를 몇 편이나 봤던 기억이 난다.
철없던 나는 2회 상영인가부터 시작해서
5회 6회까지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전하시지만 아버지는 당시 책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다.
아르바이트를 하시고 월급을 받으시면 반은 학비로 저축을 하시고 반은 책을 사는데 다 쓰셨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와 얼마나 다투셨는지... 언젠가부터 어머니도 이해하시고
아버지와 책 때문에 다투시는 일은 없으셨다.

 

당신께서 아르바이트라도 없는 날에는 어린 동생과 나를 데리고 동대문 시장 쪽에 있는 헌 책방 골목으로 데려가셨다.

(물론 지금까지 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지방으로 내려왔으니...)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때 아버지는 세계문학 전집과 청소년소설 전집을 사주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신의 수준만 생각하셨지, 국민학교 1학년 아들의 수준은 생각하지 않으셨나 보다.

집에 돌아와 책을 보니 딱 중학생 이상부터 읽을 만한 글씨 크기였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계문학전집 중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삽화는

성인잡지를 능가할 만한 수준이었다. 아마 그래서 당겼나 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딱히 놀만한 꺼리가 없었기에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고,
그해 겨울 무렵에는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어 아버지께 다른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때 아버지가 사준 책이 ‘중용’이었고, 나는 며칠을 읽어보려고 시도하다 너무 어려워 책을 숨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유전인 듯하지만 우리 집 남자들(아버지와 나 뿐이지만)은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가 보다.

아버지가 부산에 계시다가 다시 구미로 이사 가셨을 때 이삿짐의 반 이상이 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서울에서 살 때 비가 엄청 쏟아져 우리 집이 물에 잠겼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책의 4분의 3이상이 물에 젖어 못 쓰게 되었다.
아버지는 살림살이가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것보다는 책이 젖어 못 쓰게 된 것을 아쉬워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아버지가 이사할 때,

이삿짐을 옮기던 아저씨가 “아이고, 무슨 서점하십니까?”할 정도로 다시 책은 쌓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재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왠지 남보다 책을 덜 읽었다고 하면 부끄러워서 찾아 읽는 성격에다
혼자 살고 있는 조그만 자취방에도 200여권 가까이 책이 있으니
우리 최씨 집안 남자들은 책을 평생 놓지 못할 팔자인가 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는 그래서 끌린 책인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 호모부커스로 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선뜻 손이 갔다.
이 책은 엄청난 독서광으로 소문난 이권우 선생이 책을 읽으며, 강의를 하며 느낀 점과
자신의 독서관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인데,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권우 선생은 말한다. “책은 스스로 완결된 구조를 갖추지 않고 있다. 읽는 이가 책을 덮으며 그 의미를 정의할 때 비로소 완결된다.”
올바른 독서법이라는 말은 없다는데 크게 공감한다.
다양한 독서법이 존재하고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는 것이 바로 독자의 몫이겠지.
나도 나만의 독서법을 찾아 책과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평생 가져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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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학과 특성상 강연회다 문학기행이다 해서
나는 몇몇 작가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강원도 원주로 떠났던 문학기행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박경리 선생을 만날 수 있었고,
섬진강으로 떠났던 문학기행에서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연회를 통해서도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의 박민규 등의 작가를 만나기도 했다.
이런 작가들과의 인연 중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건 바로 김훈 선생과의 만남이다.

 

김훈 선생과의 첫 만남은 2002년쯤으로 기억된다.
모든 이들이 2002 한일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나는 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가 아마 상병 말 호봉이었나? 병장을 갓 달았나?
아무튼 유격 훈련장에서 폴란드 전을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군대에 있다보면 친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소포’때문이다.
흔히 ‘사제(그들의 언어로는 싸제)’라고 부르는 바깥세상의 물건을

부대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서 군인들은 소포를 자주 이용한다.
더러는 소포 안에 현금을 넣어서 보내기도 하고, 주류를 반입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사회에 있는 친지나 가족들에게 책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하고,
‘씨네21’같은 영화 잡지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는데, 워낙 사회와 단절됐기 때문에

활자로라도 바깥소식을 접하려는 절실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군 생활을 함께 했던 대학동기와 나는 소포로 친지들이 보낸 책을 서로 교환하면서 보곤 했는데,

김훈의 열렬한 팬이었던 내 친구를 위해 (친구의 누님이었는지 애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진 않지만) 소포로 보내왔던 책이 바로 ‘칼의 노래’1, 2권이었다.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가 있을까 할 정도로 그의 문체는 신선했고, 날이 선 검처럼 서늘했다.
문장이 짧고 간결한 걸 보면서 역시 신문기자 출신이구나 했지만,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우주가 있었고, 블랙홀이 있었다.
문장과 문장사이에 그 참을 수 없는 간격 때문에 김훈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봤지만,

일본문학과 시간 죽이기 용으로 김진명, 김하인의 소설을 즐겨 읽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일본문학과 김진명, 김하인 등을 비하하는 뜻은 아니다.)

그 후 나는 김훈과 실제로 대면할 기회가 생겼다.


2004년이었나? 전역을 하고 1년을 방황하다가 복학했을 때였다.
그때, 함께 군 생활을 했던 대학동기가 학과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매년 10월에 여는 국문과 학술제 행사에 초청강연회로 김훈 선생을 모시기로 한 거다.
그리곤 우리 과에서는 초청강연회를 하면 ‘혜음’이라고 스터디를 하는데 덜컥 그 스터디의 장을 나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해, 김훈이 쓴 글이란 글을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처음 썼던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도 구해서 읽어야 했고,
그가 썼던 에세이, 칼럼, 기사 등을 찾아 읽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때문에 어눌하지만 강렬했던 그의 강연회를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사히 초청강연회를 마치고 김훈 선생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해야 했다.
당시 고 학번이었던 탓에 김훈 선생과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고급스러운 복 샤브샤브가 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음식은 거의 손대지도 못하고 김훈 선생의 말에 귀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 김훈 선생은 방안에 있던 학생들 교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 때 그 눈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노트에

‘기자의 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작가의 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메모를 해 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심을 가지고 뚫어져라 관찰하는 것, 그것이 김훈 선생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런 김훈 선생의 책, ‘바다의 기별’이 지난달 새로 나왔다.
김훈의 열렬한 팬인 내 동기 녀석은 김훈 선생이 직접 사인한 초기 ‘한정판’을 구입했고,
나는 며칠이 지나 구입을 했다.
그런데 내가 구입한 책에도 사인이 되어 있는 걸 보니, 그의 책이 예전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나보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날카로운 칼처럼 여전히 잘 벼려져 있었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동안 다른 매체를 통해 노출되었던 에세이들과 책의 서문,

그리고 수상소감까지 엮어 만든 책이라 아쉬움이 컸다.
그동안 김훈 선생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가 전해온 기별에 여전히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이 시대의 명문장가의 글을 동시대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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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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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개인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싫어한다.
초등학교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고, 지금 부모님이 서울에 거주하고 계시지만
서울은 크게 정이 가는 도시는 아니다.
남한 인구의 50%가 거주하고 있고, 매연과 자동차,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
나에게 그다지 매력 있게 다가오는 도시는 아니다.

 

물론 내 또래의 청춘들은 대부분 서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한 친구도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이번에 계약이 끝나 in서울을 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서울에서 취직하기 위해, 서울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들 저마다 마음에는 ‘in서울’이 왠지 모를 주류, mainstream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일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아, 물론 내가 그런 주류가 아닌 비주류 인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내가 읽는 인문 서적중의 상당수는 문학과 관련된 책이다.
물론 요즘 철학이나 심리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도 했지만 문학이란 여전히 내가 품고 살아가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김지하, 조세희, 김승옥, 최인호, 김훈, 박완서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나게 될 작가들이 표현한 서울이라는 도시는 어떨까?

이런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문학속의 서울”이라는 책에는 작가들이 문학작품 속에서 서울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잘 나오고 있다.

사실 “문학속의 서울”이라는 책은 그다지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내가 ‘서울’이라는 공간을 싫어하는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책이기에 그냥 고맙다는 말 보다는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억.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서울은 ‘좁아터진 공간에 아등바등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서울은 이제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사람으로 가득 차고, 자본으로 가득 차고, 심지어는 범죄로 가득 차고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아니 감만 못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대구를 ‘고담대구’로 비하하곤 한다.

대구에서 대형 사고들이 많이 터졌기 때문인데, 사실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범죄는

거의 연간 37만여 건에 달해 전국 최고다. (부산은 12만여 건) 사실 ‘고담서울’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얼마 전 체중조절을 할 거라고 온천천에서 한참 열심히 운동하던 때가 있었다.
방송국 일이 10시가 넘어서야 마치기 때문에 주로 운동하는 시간이 밤 12시거나 새벽 1시쯤이었다.
그 시간에 운동을 하는 나란 녀석도 참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 시간에 온천천에서 술을 마시고 비틀비틀 하시는 분들도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사실 겁이 났다. 괜히 시비가 붙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다보니 주위에서 부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이어폰을 벗고 자세히 들어보면 그 소리는 나를 향해 있고,
나를 향해 뭐라 술주정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가볍게 무시하고 전력질주를 해야 한다.

 

가장 무서운 게 돈이고, 그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했다.
돈이든 사람이든 포화상태에 다다르면 그것들이 갖고 있는 성질은 변하기 마련이다.
돈과 물질은 그 것이 가지고 있는 자체로서의 가치를 잃어가고, 비자금으로 뇌물로 쓰이고 있다.

사람들 역시 점점 인간성을 상실해져가고 있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겠지만, 포화상태에 다다른 서울은 더욱 심할 것이다.

 

“문학 속의 서울”에서는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문학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문학 속의 서울은 외팔이 영자가 몸을 팔고 살아가는 곳이고, 난쟁이가 아파트에서 쫓겨나야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청계천의 멋진 야경의 이면에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노점상들이 있고,

반대로 강남의 고급 빌라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순 된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서울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공간’일 것이다.

희망의 도시, 꿈의 도시일 수도 있다. 7,80년대 ‘아메리카 드림’을 꿈꿨던 사람들처럼

‘서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처럼 서울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도 서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학은 허구다. 하지만 문학만큼 현실을 더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도 없다.
허구와 현실, 이 모순된 두 단어이지만, 문학을 통해 현재 그들이, 당신들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서울의 현실, 서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 속의 서울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냉정하고 냉혹한 서울의 현실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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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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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런 상상 한 번쯤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가장 먼저 나는 주저 없이 여탕에 몰래 잡입할 것이며,

다음으로는 은행을 털어 엄청난 부를 누릴 것이며,

그러다 언젠가는 그런 일탈을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다보면 다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평범한 삶이 내 마음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물론 그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상상과 비슷한 선상에 있을 지도 모를 소설.

바로 "눈먼 자들의 도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

그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고,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된지도 꽤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여겨 보는 책이었는데,

그리고 언젠가는 문고판으로 시리즈가 작게 만들어져 싸게 팔 때가 있었는데

그때 샀어야 되는데...하는 후회도 들었다.

결국 이번에 친구에게 빌려서 읽게 되었다.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이 세계에서 단 한사람만이 볼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차츰 시력을 상실하게되고,

눈이 멀어버리면서 그들은 인간성마저도 상실해버린다.

'장님들이 사는 나라에는 에꾸가 왕'이라는 말처럼

모두가 볼 수 없을 때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일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었던 그 참혹했던 현실을 혼자서만 오롯이 목격하고 증언해야만 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이 축복일 수도 있었다.

 

결국 생존한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인간성을 찾아갈 때야

비로소 그들의 눈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작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포르투갈 출신의 반정부 공산주의자였으며, 작가로 성공하기까진 수많은 세월이 지나야했다.

때문에 혼자만 눈이 멀지 않은 아내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투쟁해왔던 작가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고,

유럽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여있는 자신의 조국 포르투갈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힘든 현실에서 최소한의 양심과 지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된다. 

 

늘 실험적인 문체를 추구하며 독자들을 혼란시키는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를 보고 있으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말하고 있는 건지,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도대체 어떤 소설속 인물의 말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오직 마침표와 쉼표만 있는 그의 문체를 보면서 때로는 숨이 가쁠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짧지만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그의 글을 통해

독자들이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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