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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학과 특성상 강연회다 문학기행이다 해서
나는 몇몇 작가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강원도 원주로 떠났던 문학기행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박경리 선생을 만날 수 있었고,
섬진강으로 떠났던 문학기행에서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연회를 통해서도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의 박민규 등의 작가를 만나기도 했다.
이런 작가들과의 인연 중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건 바로 김훈 선생과의 만남이다.
김훈 선생과의 첫 만남은 2002년쯤으로 기억된다.
모든 이들이 2002 한일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나는 나라의 부르심을 받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때가 아마 상병 말 호봉이었나? 병장을 갓 달았나?
아무튼 유격 훈련장에서 폴란드 전을 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군대에 있다보면 친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소포’때문이다.
흔히 ‘사제(그들의 언어로는 싸제)’라고 부르는 바깥세상의 물건을
부대 안으로 들여오기 위해서 군인들은 소포를 자주 이용한다.
더러는 소포 안에 현금을 넣어서 보내기도 하고, 주류를 반입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사회에 있는 친지나 가족들에게 책을 보내달라고 하기도 하고,
‘씨네21’같은 영화 잡지도 보내달라고 하기도 했는데, 워낙 사회와 단절됐기 때문에
활자로라도 바깥소식을 접하려는 절실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시절 군 생활을 함께 했던 대학동기와 나는 소포로 친지들이 보낸 책을 서로 교환하면서 보곤 했는데,
김훈의 열렬한 팬이었던 내 친구를 위해 (친구의 누님이었는지 애인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진 않지만) 소포로 보내왔던 책이 바로 ‘칼의 노래’1, 2권이었다.
칼의 노래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작가가 있을까 할 정도로 그의 문체는 신선했고, 날이 선 검처럼 서늘했다.
문장이 짧고 간결한 걸 보면서 역시 신문기자 출신이구나 했지만,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우주가 있었고, 블랙홀이 있었다.
문장과 문장사이에 그 참을 수 없는 간격 때문에 김훈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봤지만,
일본문학과 시간 죽이기 용으로 김진명, 김하인의 소설을 즐겨 읽던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일본문학과 김진명, 김하인 등을 비하하는 뜻은 아니다.)
그 후 나는 김훈과 실제로 대면할 기회가 생겼다.
2004년이었나? 전역을 하고 1년을 방황하다가 복학했을 때였다.
그때, 함께 군 생활을 했던 대학동기가 학과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매년 10월에 여는 국문과 학술제 행사에 초청강연회로 김훈 선생을 모시기로 한 거다.
그리곤 우리 과에서는 초청강연회를 하면 ‘혜음’이라고 스터디를 하는데 덜컥 그 스터디의 장을 나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해, 김훈이 쓴 글이란 글을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가 처음 썼던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도 구해서 읽어야 했고,
그가 썼던 에세이, 칼럼, 기사 등을 찾아 읽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때문에 어눌하지만 강렬했던 그의 강연회를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사히 초청강연회를 마치고 김훈 선생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해야 했다.
당시 고 학번이었던 탓에 김훈 선생과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는데,
고급스러운 복 샤브샤브가 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음식은 거의 손대지도 못하고 김훈 선생의 말에 귀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 김훈 선생은 방안에 있던 학생들 교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 때 그 눈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노트에
‘기자의 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작가의 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고 메모를 해 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관심을 가지고 뚫어져라 관찰하는 것, 그것이 김훈 선생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런 김훈 선생의 책, ‘바다의 기별’이 지난달 새로 나왔다.
김훈의 열렬한 팬인 내 동기 녀석은 김훈 선생이 직접 사인한 초기 ‘한정판’을 구입했고,
나는 며칠이 지나 구입을 했다.
그런데 내가 구입한 책에도 사인이 되어 있는 걸 보니, 그의 책이 예전만큼 잘 팔리지는 않았나보다.
하지만 그의 문장은 날카로운 칼처럼 여전히 잘 벼려져 있었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동안 다른 매체를 통해 노출되었던 에세이들과 책의 서문,
그리고 수상소감까지 엮어 만든 책이라 아쉬움이 컸다.
그동안 김훈 선생도 ‘밥벌이의 지겨움’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가 전해온 기별에 여전히 반가운 것은 사실이다.
이 시대의 명문장가의 글을 동시대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