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시절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지 못했다.

 

내 국민학교 입학식 날 아버지는 8살짜리 꼬마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당신의 대학입학식에 참석하셨다.
아버지께서 늦은 공부를 시작하시느라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
그리고 나와 동생 남매의 뒷바라지까지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없는 살림에 어머니는 직장생활 하고 받은 월급으로
생활비며, 아버지 학비며 저축까지 알뜰하게 꾸려오셨다.

 

당시 아버지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셨는데,
서울 개봉동의 어느 극장 사장님의 운전사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었다.
그 사장님이 1980년대 말 당시 서울에서 10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분이었으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치곤 꽤 짭짤하셨을 거 같다.
그때 아버지 빽(?)으로 영화를 몇 편이나 봤던 기억이 난다.
철없던 나는 2회 상영인가부터 시작해서
5회 6회까지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전하시지만 아버지는 당시 책에 대한 욕심이 많으셨다.
아르바이트를 하시고 월급을 받으시면 반은 학비로 저축을 하시고 반은 책을 사는데 다 쓰셨다.
그것 때문에 어머니와 얼마나 다투셨는지... 언젠가부터 어머니도 이해하시고
아버지와 책 때문에 다투시는 일은 없으셨다.

 

당신께서 아르바이트라도 없는 날에는 어린 동생과 나를 데리고 동대문 시장 쪽에 있는 헌 책방 골목으로 데려가셨다.

(물론 지금까지 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에는 지방으로 내려왔으니...)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그때 아버지는 세계문학 전집과 청소년소설 전집을 사주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당신의 수준만 생각하셨지, 국민학교 1학년 아들의 수준은 생각하지 않으셨나 보다.

집에 돌아와 책을 보니 딱 중학생 이상부터 읽을 만한 글씨 크기였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세계문학전집 중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삽화는

성인잡지를 능가할 만한 수준이었다. 아마 그래서 당겼나 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딱히 놀만한 꺼리가 없었기에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고,
그해 겨울 무렵에는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어 아버지께 다른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그때 아버지가 사준 책이 ‘중용’이었고, 나는 며칠을 읽어보려고 시도하다 너무 어려워 책을 숨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유전인 듯하지만 우리 집 남자들(아버지와 나 뿐이지만)은 책에 대한 욕심이 많은가 보다.

아버지가 부산에 계시다가 다시 구미로 이사 가셨을 때 이삿짐의 반 이상이 책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서울에서 살 때 비가 엄청 쏟아져 우리 집이 물에 잠겼던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책의 4분의 3이상이 물에 젖어 못 쓰게 되었다.
아버지는 살림살이가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것보다는 책이 젖어 못 쓰게 된 것을 아쉬워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전 아버지가 이사할 때,

이삿짐을 옮기던 아저씨가 “아이고, 무슨 서점하십니까?”할 정도로 다시 책은 쌓였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재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왠지 남보다 책을 덜 읽었다고 하면 부끄러워서 찾아 읽는 성격에다
혼자 살고 있는 조그만 자취방에도 200여권 가까이 책이 있으니
우리 최씨 집안 남자들은 책을 평생 놓지 못할 팔자인가 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는 그래서 끌린 책인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 호모부커스로 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선뜻 손이 갔다.
이 책은 엄청난 독서광으로 소문난 이권우 선생이 책을 읽으며, 강의를 하며 느낀 점과
자신의 독서관에 대해 정리해 놓은 책인데,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독서에 대한 여러 가지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권우 선생은 말한다. “책은 스스로 완결된 구조를 갖추지 않고 있다. 읽는 이가 책을 덮으며 그 의미를 정의할 때 비로소 완결된다.”
올바른 독서법이라는 말은 없다는데 크게 공감한다.
다양한 독서법이 존재하고 자신만의 독서법을 찾는 것이 바로 독자의 몫이겠지.
나도 나만의 독서법을 찾아 책과의 인연을 죽을 때까지 평생 가져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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