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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
찰스 디킨스 지음, 김희정 옮김 / B612 / 2017년 11월
평점 :
이태리를 여행하고 온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처음으로 해외여행에서 차를 렌트했고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이태리 여행의 가장 잘한 선택이 렌트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여기저기 잘 보고왔다. 힘들었는데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이 많아서 이탈리아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생겨버렸다. 유쾌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 옛것이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열심히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라. 길게 생긴 영토라 북부와 남부의 차이가 꽤 확연했던 것도 재미있었다. 찰스디킨스도 나와 같은 애정어린 눈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그의 이탈리아 거의 전역을 여행하면서 (가족과 함께 다닌듯 하다.)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생생하게 묘사한 여행 에세이이다. 그냥 여행문과는 다르다. 이를 이제 설명하려고 한다.
찰스 디킨스는 문체가 확실한 편이다. 이 에세이 에서도 그의 다양한 작품이 생각나게 하는 특징들이 있는데 편한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독특한 문체나 글을 쓰는 성향이 드러난다.
먼저,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영화의 한 씬을 보면서 나오는 모든 사람 하나하나 배경과 날씨, 크고 작은 아주 세세한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다 묘사하고 있다. 다양한 형용사와 미사여구가 동원되어 생각하기 싫어도 저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이태리의 여러 장소와 이동하는 중간의 모든 이야기가 이렇기에 사실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은 절대 아니다. 쓱쓱 속독을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그랬다. 중간중간 지겨워서 스킵하며 읽었지만 (뒤쪽의 내가 좋아하는 도시 베로나와 로마, 특히 피렌체를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해서 앞부분은 스킵했다가 다시 돌아가서 읽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상상하면서 머리속에 영상을 만들어라. 잔잔하지만 따뜻한 여행다큐가 하나 탄생할 것이다. 영화감독이라면 그 어떤 에드립과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은 나와 다른 시대의 이태리를 여행한 디킨스의 눈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둘째는 개성을 가진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이다. 책을 보면서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작인 올리버 트위스트나 두도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인물에 대한 설명에 많은 시간과 문장을 투자한다. 꼼꼼한 그의 설명은 하나하나의 인물, 설사 지나가는 단역조차도 캐릭터를 입혀주고 살아움직이게 한다. 마치 연극대본같다. 이 책에도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하다못해 그의 마차를 끄는 용감한 안내원이나 마녀같은 감옥을 소개하는 할멈, 게임을 즐기는 남자아이들이나 로마에서 만난 영국여행객 무리인 인기많은 시크한 데이비스 부인 등..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단역들이 나온다. 그들의 짧게는 한 페이지 길게는 두 세페이지에 걸쳐 그 장소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대사와 행동들이 설명된다. 그러면서 그의 모습은 색이 입혀지고 성격에 맞는 목소리가 생겨나며 표정까지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디킨스는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낸다.
셋째는 그의 문체나 세상을 보는 시간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기억하는가. 세상 악하고 구두쇠에 못된 스쿠루지는 무서운 귀신, 영을 만나게 된다. 보통 이정도 이야기가 흐르면 공포물이 되어야 한다. 그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서운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찰스 디킨스는 이러한 무서운 대상에 대한 이야기도 웃으면서 볼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의 이야기 중에 차갑고 서늘한 것도 있다. ) 이태리를 여행하면서 보는 많은 것들 중에는 감옥이나 사형대, 고문도구가 있는 지하도 존재하는데 본인이 무섭고 소름끼친다고 쓰긴 했으나 그 장소에 대한 서술은 하나하나 따뜻하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참 따스한 느낌이 든다.
넷째번의 특징은 그의 솔직함의 매력이다. 나도 잘 아는 여러 고전의 작가가 등장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소설도, 미켈란젤로나 다 빈치와 같은 화가의 그림도, 뛰어난 건축물도 나온다. 그것에 대한 그의 평가가 참으로 솔직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구애를 하고 사랑을 표현한다. 위대한 작품임에도 어떠한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솔직하게 비판한다. 자신이 그림을 보는 눈이 없다고까지 이야기를 하는 대작가님이시다. 유명한 건물을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콜로세움처럼 자신이 감명을 받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한편의 시와 같은 문구들로 찬양을 해 놓았다. 실제로 이태리를 가서 많은 것들을 보면서 나도 생각과 감상이라는 것을 했는데 일부분 디킨스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들이 있었다. 다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찬양하고 이렇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구나 라고 감탄을 했다. 그는 매력적인 뛰어난 문호이다.
책을 보면서 내가 실제로 다녀왔던 여러 장소에 대한 그 당시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익숙한 성당이나 유명한 장소들이 나오는것을 보면서 다른 시대이지만 그도 나와 같은 그길을 걸었구나 라는 묘한 감동도 있었다. 전혀 다를 그 시대를 충분히 상상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상상력을 요하기에 지루해질수도 있지만 이태리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혹은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머리속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만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소장하고 싶은 책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