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 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 온워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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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받아들고 얼떨떨했다. 90년대의 문화와 정치 사회를 아울러서 한권의 책에 묶어보겠다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들리는 순간이었다.

이걸.. 언제 다 읽지...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꽤 궁금했다.

나는 90년대에 국민학교를 나왔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생이었다. 시대를 앞서지도 못했고 유행에도 민감했지만 공부이외의 모든것이 즐거웠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도 호기심이 더 많았던 나름 X세대를 보고 자랐고 그 뒤를 바짝 쫓아갔던 세대였다. 한국은 꽤나 경제적으로 성장한 덕분에 문화적으로 학생들이 즐길 여건이 되어가면서 서태지와 신승훈에 이어 HOT와 젝스키스라는 아이돌 문화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급하게 쌓아올린 경제의 맨얼굴이 드러나면서 대교나 백화점이 무너지며 부실공사로 인해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르렀고 IMF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으며 많은 이들을 좌절하게 하기도 했다. 미국의 90년대는 어땠을까? 같은 동시대인데.. 아무래도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나라와 많이 달랐을까 라는 호기심에 읽게 된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어느정도 공감이 가고 어느정도, 꽤 많은 부분은 공감할수 없었다. 그저 90년대 미국의 근현대사를 르포로 읽는 느낌. 딱딱하지 않은 작가의 필력에도 조금은 지루함을 느꼈던것은 내가 겪지 않은 문화를 작가는 독자가 안다고 가정하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문화라는 것이나 사회적 현상은 글로 읽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면서 체득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90년대는 인생이 별거 없다는 사고방식이 별것 이상의 화력을 몰고 그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적인 정서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기였다. 이것이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다. .. 지금 돌이켜 보면 90년대부터 세상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통제와 구제가 불능할 만큼 정신없지는 않았다.

90년대 중에서

이 책은 총 12장으로 챕터를 나누며 90년대를 상징하는 현상들을 당시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정치적 사건, 스포츠 등 다양한 사건들을 접목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인들이라면 꽤 유의미하게 다가왔을 것 같고 미국의 당시 음악이나 사회적 이슈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역시나 재밌게 읽을것 같다.. (개인적으로 모르는 밴드나 사건, 인물들이 많아서 습득하고 이해하기 좀 어려웠다.)

1장 에서는 자의식 과잉으로 인해 쿨함이 지배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부분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자기중심주의의 이 세대는 기존세대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모든것을 너무 애쓰지 않고 괜찮은 척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부나 명예를 쫓아가는 것을 비난하던,, 혹은 도덕성을 비판하는 것은 주제넘는 다고 생각하며 무관심하고 약간은 체념하는 듯한 게으름이 최고덕목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문화라기보다는 그 당시 나의 상황이 사춘기였고 사춘기들의 특징인것도 같다.

회의주의에 대해 다루는 2장, 조지부시의 대통령당선 실패의 원인인 페로의 지지자들에 대한 3장, 인종차별과 성소수자, 여성에 대한 인식의 흔들림에 대해 다루는 4장, 80년대 비디오의 역사의 연장으로 발현되는 영화 문화의 다양성과 그안에서 두각을 드러난 타란티노 작품을 이야기하는 5장, 인터넷의 발명으로 달라진 사회 문화적 변화를 다룬 6장, 조던의 프로야구 도전에 대해 꽉 채운 7장까지는 좀 지겨웠다.

8장부터는 아는 내용이 많아서 쉽게 읽혔던것 같다.

순수함을 표방한 산업의 모습으로 하얀 콜라(크리스털 펩시)나 맥주(지마) 그리고 복제라는 과학적인 결실(돌리)이 만들어낸 영화(쥬라기 공원)나 책 음악적인 문화적 이야기를 다룬 8장(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특별히 X세대의 특징이 보이지 않은, 대중적이고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가 사랑받았던, 대표적인 문화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프렌즈, 사이러스-을 다룬 9장(역시 아는 내용들이라 꽤 재미있었던 챕터였다!!), 매트릭스라는 영화에서 언급되는 진짜라는 정의로 시작되어 연방정부청사폭파사건, 대법관후보였던 토마스의 성스캔들, 유명한 OJ심슨 사건, 콜럼바인 학교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이 믿기지 않는 거짓같은 진짜 사건들을 다루면서 사람들이 이러한 뉴스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10장, 빌 클린턴에 대한 11장을 지나 90년의 마지막인 밀레니엄을 대하는 자세를 다룬 12장까지 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중 6장의 인터넷을 받아들이는 세대간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이나 그 전보다 익명성에 대한 문제점을 더 많이 지적하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은 공감이 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옛날 공중전화박스에 있던 두꺼운 전화번호 책에 왠만한 전화는 다 기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때에는 쉽게 공개한 개인정보를 인터넷에서는 더 조심하게 된 심리가 잘 그려진다. 검색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고 음악을 대중과 공유하게 됨으로써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 역시 우리나라와 닮아 있어서 읽으면서 공감했던 것 같다.

후반8장이 지나면서부터 알고 있던 영화나 음악, 다양한 사건들이 나오면서 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시작과 통찰력에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문화적 상황과는 꽤 다른 부분이 많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궁금했던 90년대는 내가 경험한 나의 문화의 90년대이기에. 하지만 미국의 여러 사건들이나 문화의 흔적을 읽는 재미를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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