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편의 편지
김태환 지음 / 마인드유니버스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군대에 간 남자친구에게 하루하루 일기쓰듯 한 권 빽빽하게 사진까지 붙여가며 편지를 써서 선물로 준 적이 있다. (부끄,,)

처음 우리 만난 날 추억이, 때로 혼자라서 더 그리운 감정이, 어떤 날은 좋은 것을 혹은 맛있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간절함이 한글자 한글자 꼭꼭 눌러담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비싼 명품보다 훨씬 소중한 그 시절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편지다이어리였다.

글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글씨가 그리 바르고 예쁘지는 않은 편이다. 귀엽다고 표현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다 쓰고 나서 빽빽한 글을 보다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쓴 적도 있다. 심지어 다한증이라 손에 땀이 항상 많이 나서 글을 쓰다보면 종이가 젖어버려 손아래에 휴지나 손수건을 대고 글을 써야한다. 그럼에도 워드로 친 글보다 수기로 써 준 글이 더 감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전달할 때에는 손으로 쓴 간단한 쪽지를 전달하곤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긴 편지글을 쓰는 일은 줄었고 한참 취미처럼 모으던 편지지는 낡은 종이가 되서 책장한구석에 밀려나 있다. 몸이 편한 걸 알아버려서일수도 있고 마음이 각박해짐이 성장이라 착각한 어른이 되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알게 되고 서른 편의 편지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부모님이 떠올랐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언제나 드렸던 뻔한 내용의 카드나 편지가 언젠가부터 현물과 현찰로 바뀌었다. 그나마 철이 든 고등학교 때는 나름 마음이 담긴 장문의 편지를 써서 드렸고 그 편지는 일년이 넘게 안방 장식장에 놓여져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보다 성큼 다가온 부모님의 노쇠함에 깜짝 놀랄 때가 가끔 있다. 얼마전 눈이 잘 보이지 않아 힘들다는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애꿎은 핸드폰을 탓하면서 게임 좀 그만하시라 했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운맘에 서글퍼졌다. 그리고 발견한 책이라 부모님께 써야겠다고 바로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얀 표지에 비둘기 모양의 깔끔한 금박 무늬는 선물로 드리기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내용구성이 알차고 글을 서술하기 좋은 테마로 나열되어 있다.

만남의 문/ 회상의 계단/빛 내린 오솔길/기억의 서재/ 헤엄치는 언덕길/ 시간의 들판/깊은 들길/마음의 언덕/용기의 다리/진심의 방/삶의 정원

11개의 테마별로 앞장에는 그 테마에서 쓸 수 있는 글감의 주제들을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온다. 이어 편지를 쓸 수 있는 공간들이 이어진다.

예쁜 구성과 편지를 쓴다는 기대감에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서른편이나 되는 편지를 쓰자니 과연 다 채울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드시기 전에, 그리고 내가 후회하기 전에 내 인생의 기본이 되었던 그분들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어떤 기념비보다 값질 것이고 과거를 가장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책 띠지에 적힌 말처럼 이 편지는 부모님과 나의 소중한 기억의 증거물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남편 아내에게 혹은 자녀에게 아니면 부모님에게 이 책에 마음을 가득 채워 선물로 주는 건 어떨까.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선물이 되리라 확신한다.


편지는 언어로 만들어진 특별한 기념비입니다.

편지는 과거를 정돈하고 미래를 바꿉니다.

편지는 글을 예쁘게 잘 쓰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편지는 소중한 기억이 있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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