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특별보급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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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을 본 후로 다른 책도 눈길이 갔다. 그중 눈길을 끈 게 《공허한 십자가》였다. 뭔가 음울해 보이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출판사에서 특별보급판도 발간한 터라 행간이 넓고, 비싸기만 한 다른 책보다 훨씬 저렴하게 똑같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읽기 전에 먼저 독자들의 평을 가볍게 본 후라, '사형제도'에 관한 내용 정도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다른 그 어떤 책보다 '사형제도'에 관해, '죽음', '유족'에 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한 적은 없었다. 사형제는 뜨거운 감자인 만큼 찬반의 의견이 거센데, 사형제 폐지론자의 가장 큰 주장은 진범이 아닐 경우 이미 잃어버린 사형수의 목숨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무게감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도에 마지막 사형집행을 한 뒤로 사형제가 폐지되진 않았으나 잠재적 사형폐지국이 되었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사형으로 맞서기보다는 무기징역으로 끝까지 죄를 감내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라 그동안 사형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보는 사형제의 중심은 '범죄자'를 향해 있지 '유족'을 향해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책 <공허한 십자가>를 읽고선 남겨진 유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흉악한 살인범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가장 큰 목표는 '사형 판결'이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겪어야 할 시련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는 사실은 유족을 평생 짓이겨 놓는다.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도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이혼을 하고, 직장도 잃고, 겨우겨우 살아가거나 사형제의 헛점에 대해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산다.

그러면 반대로 범죄자는 어떤가? 책에선 두 사건이 있고, 그에 따라 각각의 범죄자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경찰에 붙잡혀 사형을 당하고, 하나는 범죄가 발각되지 않아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사형제도로 인해 사형 당한 범죄자는 자신의 행한 범죄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재판을 계속하기 귀찮다며 그 판결을 받아들인다. 계속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범죄자는 자신의 범행을 잊지 않고 사회에 헌신하고, 죄책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이야기를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던지는 메시지는 유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사형제는 범죄자가 교정하기에 최선이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제에 대해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어도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이번 책을 높이 산다. 게다가 그의 특징인 술술 읽히는 흡인력 있는 문체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밀려오는 아련함은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이전까지 읽은 그의 책들은 사람이 이런 것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른단 말이야?라고 생각할 만한 동기로 이야기가 진행됐는데, 이제는 점점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써내려가는 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붉은손가락>,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을 때처럼 간만에 넋이 빠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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