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전수찬 지음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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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yyn0521/208093446

 

 

인터파크를 통해 전달받은 이번에 전달받은 책은 전수찬 작가의 '수치'. 개인적으로 한국소설의 특유의 음울함(주인공이 시니컬하거나, 고통에 허우적대거나, 혹은 후회로 점철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주인공의 감정과 관념에 빠져서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도, 돌아돌아 이해하게 만드는 스타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표지도 그렇고 '수치'라는 제목도 그렇고 내가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의 소설이 나왔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꼭 읽고 싶은 마음이 아닌, 읽어야 되기에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로 재미를 느낄 만한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한국소설의 관념주의보다는 사건의 전개와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 것 같아 좋았다. 보통 한국소설엔 평론가의 설명이 실리곤 하는데, 소설 자체도 평론가의 설명도 너무 심오할 때가 많다.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의 짬을 내어 바쁜 와중에 즐거움을 느끼고자 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읽고 나면 더 피곤해지는 건 목적을 상실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수치'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고, 한국소설에 대한 편견도 살짝 깨부순 책이었다. 주인공 이원길(나)를 내세워 이야기를 진행시켜 가는데, 이원길은 탈북자다. 꽤 비중있게 나오는 그의 친구 '영남'도 탈북자다. 그리고 같이 세상에 존재했었지만, 죽음을 택한 '동백' 역시 탈북자였다. 그들은 모두 북한에서 가족과 함께 탈출했지만, 자신만 살아남아 남한에 내려왔다는 공통적인 수치심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동백은 결국 죽기 전 가족들의 행방을 찾았고, 가족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노란색 물감을 뒤집어쓰고선 자살을 해버린다. 제3자에겐 난해한 죽음일 뿐이었지만, 그에겐 자신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조롱거리가 된 슬픈 죽음이었다. 그 죽음의 이면을 알고 있는 영남과 원길은 그 죽음으로부터 자신들의 고통, 수치심을 안고서 계속 삶을 유지해나간다. 

 

영남은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혼자 강원도로 이사를 떠나버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던 원길도 자신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뒤에 영남의 권유로 강원도로 잠깐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올림픽 유치의 이권을 둘러싼 마을 노인들, 협회, 시위자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자그마한 이익을 얻기 위해 진실은 필요없는 사람들. 이 이야기가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만하고,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공감하는 한편, 씁쓸한 마음으로 읽었다. 개인적으로 탈북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탈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은 '받아들이면서 내치는' 차가운 나라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빨갱이들은 물러가라'라는 현수막을 보고 눈물 흘리는 원길의 딸. 본의 아니게 이 땅에 사는 탈북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기고 있었을까. 길지 않은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수치'. 한국소설에는 관심이 없어, 전수찬 작가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소설이었지만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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