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구하러 오는 꿈을 꾸지만 깨어나면 나는 다시 멸망의 현장에 와 있다. 죽음은 결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닫는다. 이곳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내가 목격해온 폐허의 적막과 고요는 어디까지나 살아서 그것을 목격하는 이들의 것이었다. 적어도 죽어가는 이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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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박해졌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고, 작은 글씨를 무리 없이 볼 수 있고, 좋은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고, 활발하게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몇십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hide in plain sight‘ 라는 영어 표현처럼 늘 같은 자리에 존재했으나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종류의 진실이었다. 스물아홉 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이 사실은 시야에 포착되었다.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나는 염려한다. 읽으려던 책을결코 다 읽고 죽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읽어야 한다. 매일읽어야 한다. 고요 속에서 읽고 또 읽는다. 이걸 다 읽고 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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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가 말했다. 언제든지 돌아오라고? 전화하라고? 메일쓰라고? 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럴 땐 똑같이 말하는 게 제일좋다.
"언제든지."
나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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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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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죽지 않는 거, 하고 싶다."

"있어? 그런 거?"

"………그럼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는 거, 하고 싶다."
"그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그 두 일에 대해, 혹은 둘의 교집합에대해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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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림자, 그림자라는 것은 한번 일어서기 시작하면 참으로 집요하기 때문에 그 몸은만사 끝장, 일단 일어선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으니 살 수가 없다는 둥의 이야기를 아무 곳에서나 불쑥 말하곤 하다가 그는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죽고 맙니다.
죽나요.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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