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틱낫한 스님이 새로 읽고 해설한 반야심경
틱낫한 지음, 손명희 옮김, 선업 감수 / 싱긋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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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와 반야심경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틱낫한 스님의 명성이야 많이 들어왔으며 저서 또한 몇몇권은 소장해두고 있을 정도로 읽었지만 반야심경에 대한 책은 읽은 적이 없었다.

'최상의 행복의 이르는 지혜'라는 제목을 본 친구도 읽고 싶다고 하다가 반야심경의 해설이라는 설명에 이내 손사래를 쳤다.

가끔 중국 사극이나 불교 관련 다큐에서 반야심경에 대한 부분을 본 적은 있지만 정확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괘 오래전 불교의 기본 교리나 역사에 대한 책을 읽은 적도 있고 금강경에 대한 책은 조금 읽은 기억이 있지만 반야심경은 이름만 많이 들아왔을 뿐 그 내용을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알게 된 거 같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주 오래된 영화 제목으로 의미조차도 모르고 중얼거린 이 말이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이라는 것도 '갔네 갔네 건너갔네' 라는 그 의미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반야심경의 풀 네임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며 이 반야바라밀다는 '완전한 이해' 즉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반야심경은 우리를 두려움과 폭력이 없는 곳으로 인도해 주는 본질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이라고 하니 반야심경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아쉽기도 했다.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반야심경 새 번역본을 '강 건너 참자유에 이르는 지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불교에서 '공 空'은 중요시하지만 이는 허무주의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불교에서 허무주의는 괴로움을 초래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견해라고 여겨진다고 한다.

더 이상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으며,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으매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릇된 인식을 타파하여

완전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느니라.

'관세음보살'은 많은 보살님들 중에 한 명이라고만 알았는데 '세상의 울부짖음을 듣는 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니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이라는 인사말의 의미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물을 따라 낸 컵을 보고 '아무것도 비어 있는 않은 상태일 수는 없다'라고 하는데 그 의미에 대해 한참이나 책 읽기를 멈추고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해봤던 거 같다.

'반야심경을 공부하면 우리가 실제로 처한 상황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발견하게 되어 번뇌와 괴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다고 요란한 사원과 불단, 공물들을 보면 제자들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려고 하는 짓이라며 한탄하는 부처님이 지금의 형상을 보시며 부처 노릇을 하고 싶지는 않으실 거라는 생각에 웃음도 나왔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구나 부처님에게 악마는 마라가 아니라 자신의 의도의 멋대로 해석하고 이용하고 있는 제자들이었을 것이다.

부처님은 두려움의 본질과 당면한 위험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라고 조언하신다는 글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교는 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글을 읽으면서 흔히 알고 있는 윤회사상과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행복으로 가는 길 자체가 '행복'이라는 글에서 도대체 행복이 뭘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불교 수행의 목적이 열반이나 해탈이 아닌 통찰에 의한 해방과 자유라는 글에 의아하기도 했지만 그 행방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반야심경'은 우리 마음의 밭을 가꾸도록 주어진 관세음보살의 선물이라고 한다.

불교와 부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믿음과 신앙을 자신을 위한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수양하여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길에서 자신 또한 더없이 행복한 마음의 수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읽은 틱낫한 스님의 새로운 책은 코로나로 어수선하고 날카로워진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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