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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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삶을 다루고 있는 책은 한 번에 읽을 수 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삶의 무게를 느끼며,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답답한 가슴으로 짧은 호흡을 하며 읽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하여, 이 책은 쓰이고 읽히며 다른 이들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고 혐오한다. 자신의 무지를 무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장애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불행한 것, 불쌍한 것, 남의 도움 없이는 일상의 생활이 불가능하며 치료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겨낸 사람들은 아주 대단하고 존경스러우며 그들의 인생은 내 삶의 동기부여를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초등학생 때 ‘닉 부이치치’의 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애인의 인생은 비장애인의 교과서로, 수단이 되었다.

빈곤, 성차별,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장애는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것이다.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출발하는 저상버스, 혹은 그 기회조차 주지 않은 일반 버스, 홀수와 짝수, 둘 중 한 층에서만 멈추는 엘리베이터, 군데군데 빠져있거나 위험한 곳과 이어져있는 점자 보도블럭, 자막은 당연하다는 듯이 제공되지 않는 국내영화, 강연, 연극 등의 문화생활, 모두 불평등이며 사회가 발 벗고 나서 개선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방구석에서 그들이 불쌍하다고, 불행하다고 동정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실 자신과 완전히 같은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쭙잖은 논리로 자신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그 개개인을 혐오하고 차별한다. 그들의 논리는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조직적으로 확산되어 주류의 의견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누가 감히 무슨 권리로 타인을 혐오한다는 것인가. 차별 받아야 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실격’이란 없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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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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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정신적으로 안전이, 평등이 보장되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 있었다. 불평등과 혐오가 더는 사람을 죽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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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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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것 같았다. 정말 부유한 사람도 병 앞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죽음에서의 이야기였으며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차별받으면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질병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폐병에 걸리는 것은 흡연을 했기 때문이고, 폭염으로 사망한 것은 집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흡연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열악하고 위험한 근로 환경이 있었고, 그들이 에어컨이 있는 장소를 찾아 가지 못한 이유에 높은 범죄율과 불안한 치안이 있었다는 것을 찾는 것이다. 사회적, 정신적으로 안전이, 평등이 보장되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 있었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암에 걸렸던 사람들, 아파도 쉴 수 없었던 비정규직들, 가습기 살균제에 화학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아이들,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책임을 미루기만 했다. 또한 김영원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한 사람의 유서가 소개되어 있다.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습니다.’ 서른 네 살의 지체장애인인 김순석씨는 휠체어를 타고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손수 만든 물건을 파는 상인이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며 받는 멸시와 모욕은 참을 수 있었지만 휠체어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진 물리적인 공간은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자살을 하였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제도나 규제가 있었더라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혐오와 차별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노인, 난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차별받는다. 혐오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계획적으로 확산된다. 어떤 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그 혐오를 논리적인 것처럼, 말이 되는 것처럼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확산시킨다. ‘이것 봐. 우리가 주류야. 너희는 틀린 거야. 미워해 마땅한 사람, 이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폭력을 휘둘러도 돼.’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곧 옳은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게 된다.

북튜버 겨울서점의 영상을 본 후 이 책을 읽은 날은 18년도 8월 13일이었다. 질병의 원인과 책임을 분석하는 책의 내용이 새로웠고 알아가는 것도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나 혼자 읽고 감동을 받는다 하더라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감소하지 않으며 부조리한 사회구조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씁쓸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 후 9월, 우연히 시청하고 있던 뉴스에서 책에서 연구되었던 쌍용차 해고 근로자들을 9년 만에 전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었다면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잘 됐구나.’에서 끝났을 것이다. 책에서 알게 되어 안타까워했던 사건이 실제로 해결된 것을 보며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했다. 다른 분들에게도 이 책이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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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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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함께하는 따듯하고 다정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동물권, 환경, 그 시절 아르헨티나의 사회상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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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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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놀랐고 흥미로웠다. 펭귄 후안 살바도르(애칭 후안 살바도)와 함께 하는 이야기는 귀엽고 다정했으며 따뜻했다. 또한 책은 동물권, 환경오염, 당시 아르헨티나의 문화, 사회상 등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하였고 관련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책의 시작은 이렇다. 저자는 남미의 한 해안가에서 기름유출로 인한 펭귄 떼죽음을 목격한다. 처참함을 느끼던 중 펭귄 한 마리가 검은 기름을 뒤집어쓰고 날개를 퍼덕이며 살아있는 것을 본다. 곧 그는 펭귄을 잡아 자신의 숙소로 데려가 깔끔히 씻겨준다. 펭귄을 다시 바다에 놓아주려 했지만 펭귄은 떠나지 않았고, 직장인 아르헨티나로 이동해야했던 저자는 펭귄을 데리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시행착오와 아찔한 순간들 끝에 저자는 직장, 즉 기숙학교까지 펭귄을 무사히 데려오고, 자신의 방에 딸린 야외 테라스에 펭귄을 살게 한다. 당연하게 펭귄은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고 학교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책을 읽던 초반에는 비전문가가 덜컥 펭귄을 키워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자가 아르헨티나의 동물원에 펭귄을 보낼 생각으로 답사를 하던 중 동물원의 환경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저자가 학교에서 펭귄을 키우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고민은 말끔히 해결됐다. 테라스보다 더 좁은 수족관에서 펭귄 여러 마리가 생활하고 있었다는 동물원 묘사를 보고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동물원이 생각났다. 동물을 가두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죽게 만들고, 돌고래 등을 타는 것을 체험이라며 상품으로 팔고, 동물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남은 동물은 나몰라라 하며 운영을 중지해버리는 동물원들. 이제는 불매하는 동물원과 수족관, 동물카페가 생각났다. 그 안에서 고통받고 있을 동물들도. 책의 끄트머리에도 나오지만 다친 야생동물들을 구출해 관리하는 동물원(등의 시설)까지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시설들을 없애자는 것이다. 지금도 유리에 머리를 찧으며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을 생각해보라.

펭귄 후안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후안이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저자가 남미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이야기들이다. 아르헨티나에 대해선 '트래블러'라는 여행예능을 보며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글은 처음 읽어봐 매우 흥미로웠다. 2016년에 출간된 이 에세이는 저자가 40여 년 전에 겪은 일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 남미, 아르헨티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하루 만에 물가가 2배가 되고, 총기로 시민을 위협하며 갑작스러운 몸수색을 하는 등 사회가 매우 불안정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역사에 무지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이에 대해선 후에 관련 서적을 찾아볼 생각이다.

펭귄 후안 살바도르로 인해 치유받고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 '디에고'라는 학생은 형편이 어렵고 숫기가 없으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 시기에 후안이 저자에게 구출되고 나서 처음으로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게 되고 디에고가 그와 함께 수영을 하는데, 매우 뛰어난 수영실력을 가진 것이 드러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에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후안으로 인해 치유받고 성장했을 거라 생각하니 감동적이었고 책을 읽은 게 정말 잘 한 일로 느껴졌다.

인외의 존재와 함께하며 성장하고 결국 그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이들로 세계가 가득 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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