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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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것 같았다. 정말 부유한 사람도 병 앞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죽음에서의 이야기였으며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차별받으면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다. 질병의 원인을 사회에서 찾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폐병에 걸리는 것은 흡연을 했기 때문이고, 폭염으로 사망한 것은 집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흡연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열악하고 위험한 근로 환경이 있었고, 그들이 에어컨이 있는 장소를 찾아 가지 못한 이유에 높은 범죄율과 불안한 치안이 있었다는 것을 찾는 것이다. 사회적, 정신적으로 안전이, 평등이 보장되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 있었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암에 걸렸던 사람들, 아파도 쉴 수 없었던 비정규직들, 가습기 살균제에 화학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아이들, 그들을 죽인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책임을 미루기만 했다. 또한 김영원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는 한 사람의 유서가 소개되어 있다.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습니다.’ 서른 네 살의 지체장애인인 김순석씨는 휠체어를 타고 남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손수 만든 물건을 파는 상인이다.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며 받는 멸시와 모욕은 참을 수 있었지만 휠체어가 다닐 수 없게 만들어진 물리적인 공간은 극복할 수 없었고 결국 자살을 하였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제도나 규제가 있었더라면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혐오와 차별 때문에 아픈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자나 트렌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노인, 난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는 차별받는다. 혐오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양산되고 계획적으로 확산된다. 어떤 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그 혐오를 논리적인 것처럼, 말이 되는 것처럼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확산시킨다. ‘이것 봐. 우리가 주류야. 너희는 틀린 거야. 미워해 마땅한 사람, 이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는 폭력을 휘둘러도 돼.’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곧 옳은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게 된다.

북튜버 겨울서점의 영상을 본 후 이 책을 읽은 날은 18년도 8월 13일이었다. 질병의 원인과 책임을 분석하는 책의 내용이 새로웠고 알아가는 것도 얻어가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나 혼자 읽고 감동을 받는다 하더라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감소하지 않으며 부조리한 사회구조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씁쓸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나 한 달 후 9월, 우연히 시청하고 있던 뉴스에서 책에서 연구되었던 쌍용차 해고 근로자들을 9년 만에 전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었다면 그저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잘 됐구나.’에서 끝났을 것이다. 책에서 알게 되어 안타까워했던 사건이 실제로 해결된 것을 보며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책을 읽게 된 것에 감사했다. 다른 분들에게도 이 책이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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