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항해술
화이트 리뷰 인터뷰, 정은주 옮김 / 유어마인드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소피 칼


불탄 침대를 사용한 것이 처음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어 ”하숙생이 네 침대에서 분신을 시도했지 뭐니!“라고 했다. 나는 그 침대의 사진을 찍었고, 침대가 폐기장으로 옮겨지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할 생각도 했었다.


조지프 코수스, 마르샬 레스, 로이 릭턴스타인, 사이 트웜블리, 크리스토, 듀에인 마이클스 등등. 이들의 작품은 내게 영향을 미쳤겠지만, 스타일이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가 그랬을 거다. 사실 내 문체가 성긴 것은 사람들이 서서 읽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서이기도 하다. 벽에 걸리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짧게 쓸 필요가 있었다.



보드리야르는 당시 칼이 작품의 대상과 어떤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우연한 만남이라는 만족스러운 결말을 그려내고 싶은 욕망에 이끌렸으리란 견해를 부정한다.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어떤 접촉이나 관계를 발생시키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유혹의 대가다. 이야기가 시시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이 누설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1983년에 칼은 길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주소록을 줍는다. 그리고 이 버려진 흔적 혹은 단서를 출발점으로 삼아 범죄를 수사하듯 모르는 사람의 삶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그는 칼이 파리의 환락가 스트리퍼로 일하면서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을 펴낸 사실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그처럼 칼은 스스로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1981년 4월에 그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자신을 미행할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나의 존재에 대한 증거 사진을 제공”받는다. 그러고 그 ‘도촬’ 사진들을 모아 <미행(La Filature)>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진실과 허구를 수수께끼처럼 오가고 지리멸렬한 현실의 경험 속에 서사적 구조를 도입하는 이 예술가의 작업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작가와 이론가들을 매료시켰다. 폴 오스터는 1992년에 발표한 소설 <거대한 괴물(1992)>에 칼을 모델로 한 인물 ‘마리아’를 등장시킨다.



… 독특하고 개인적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매체나 분야에 속한다고 보기가 어렵다… 예술을 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기보다는 자신의 강박을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꼭 그대로 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 칼의 프로젝트에 대해 무작위성과 우연성을 창조하는 게임의 전략에 따라 구상된다고 썼다. 그러나 예컨대 울리포 집단이나 윌리엄 버로스 … 우연적 사건을 고안한 몇몇 모더니즘 이후 예술가들과 달리 칼은 ‘우연성’이 무작위성의 암호를 풀고 숨겨진 의미를 폭로할 수 있다는 식의 어떤 명확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 겉보기엔 불가사의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덜 낭만적이다. 오히려 그는 우연성이라는 빈 공간이 실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을 따름임을 폭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