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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평점 :
그러나 미래에 더 이상 어떤 의미론적 내용도 없는 까닭에, 시간의 진행은 어디론가를 향한 전진이 아니라 단순히 끝없는 현재의 사라짐일 뿐이다.
그러면 왜 의미의 중심이 사라지는가? 세계를 인간의 작위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근대적 세계관이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간은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세계를 바꾸어갈 수 있기에 주체로 정립되고, 이러한 주체-됨이 인간에게 지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지고의 가치를 실현해주는 것은 바로 인간의 행위이기 때문에 조작 가능성과 자유의 세계관은 결국 '활동적 삶vita activa'의 절대화로 이어진다. 무엇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은 완전한 자유가 인간의 존재 가치가 된다. 그러나 구속되어 있지 않음으로서의 자유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의미의 중심은 인간이 그것에 구속되어 있다고 느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모든 구속에서 해방된 인간 자신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순간, 의미의 중심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만다.
활동적 삶은 시간도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주체적 개입을 통해 시간을 단축시킨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 전신, 라디오,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화, 이 모든 것이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한 지난한 싸움이었다.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시간에서 자유로움으로써 완전한 주체가 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 싸움 속에서 전통적인 시간의 리듬, 그리고 그 리듬 위에 형성된 삶에 대한 감각은 파괴된다. 모든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는 인간의 막대한 능력이 시간을 더할 나위 없이 가볍게 만든다. 무엇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줄어드는 데 비례하여 시간의 값은 싸지기 때문이다. 그러자 시간의 보복이 시작된다. 무게를 잃어버린 시간은 댐이 무너진 거센 물살처럼 마구 흘러가버린다. 인생도 그 물살에 휩쓸려 가볍게 떠내려간다.
문제는 기계 자체도 아니고 각종 첨단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속도 자체도 아니다. 가속화라는 현상은 세계를 인간 의지에 따라 지배하는 활동적 삶을 인간 존재의 유일무이한 가치로 보는 세계관의 파생적 결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