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글쓰기 - 전시의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한 글쓰기에 관하여 박물관의 일 1
국립중앙박물관.국립박물관문화재단 기획 / 이케이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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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이런저런 전시를 보러다니면서 박물관/미술관의 글을 자주 접했다. 좋았던 경우도 있었고, 아쉬웠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박물관의 글쓰기"가 알라딘 추천 도서로 떴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책은 독서교육에서 이야기하는 텍스트 복잡도text complexity(이독성readibility)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짧고, 쉽고, 정확한 글을 쓰기 위해 박물관에서 정말 다양한 방법들을 쓰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문식성 교육, 공공언어학 등의 관점에서도 더 깊이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책을 읽고 드는 몇 가지 생각


1.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는 구체적이지만 추상적인 지향점

말 그대로이다. 다수의 큐레이터들이 '중학교 2학년 수준'을 지향하지만 정작 그 글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식성 교육 분야에서 텍스트 복잡도 측정에 대한 여러 공식이 개발되어 활용되고 있다. 또한 공식으로 완벽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아직 박물관의 글쓰기에까지는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텍스트 복잡도에 대한 양적, 질적 측정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장애인 관람객용 설명문 작성에 들어가는 중학생 감수를 확대 시행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결과를 역으로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는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가독성의 문제

박물관/미술관에서 전시품을 볼 때 가독성legibility이 떨어지는 경우가 예상 외로 잦았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줄을 쳐 놓았지만 줄 앞에서도 설명카드의 글자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정 시력이 1.0이 넘는 나도 잘 안 보이는데, 눈이 나쁜 사람들은 작품에 더 가까이 갈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글자 크기를 더 키워야 한다. 

3. 『표준국어대사전』의 잘못된 점다點茶

p.209 다듬기 전: 송대의 왕관국王觀國(~12세기)은 『학림學林』에서, "차 중의 상등품은 모두 점다로 마신다. 보통의 차는 모두 달여 마신다茶之佳品, 皆㸃啜之; 其煎啜之者皆常品也"라고 하였습니다.


p.209 다듬은 후: 송나라 때 사람인 왕관국王觀國은 "차 중에서 고급차는 모두 우려 마시고, 보통의 차는 모두 달여 마신다"라고 했습니다.


㸃啜을 '우려 마신다'로 다듬었는데, 이는 맞는 것이기도 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마른 찻잎을 끓는 물에 부어 우려냄)를 따른다면 맞는 것인데, 동양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㸃啜, 點茶가 '우려 마신다'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다음 장에서 점다의 실제 의미가 나온다.


p.210 다듬기 전: 병차는 편차片茶, 단차團茶라고도 하며, 초차는 엽차葉茶 혹은 산차散茶라고도 하였습니다. 송대에는 주로 단차를 가루로 만든 뒤 다완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다선을 휘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점다點茶 방식으로 즐겼습니다.


이것이 점다의 실제 의미이다. 점다가 어쩌다 우려 마신다(포다)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정되어야 할 항목이라는 것을 잘 알아볼 수 있었다. 

4. 6부 1 단어바꾸기 14번 문항

pp.255-256: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제작 시기는 지증왕 2년(501)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만들어진 시기는 


모범 답안에 따르면 14번 문항은 "포항 중성리 신라비의 만들어진 시기는 지증왕 2년(501)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가 된다. '신라비의 만들어진 시기'도 어색하고, '만들어진'이 두 번 반복되어 문장이 꼬여버렸다. 해당 문장은 단어만 바꾸어서 되는 게 아니라 문장 구조를 전반적으로 다듬는 것이 나아 보인다. 위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


 ☞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지증왕 2년(501)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만들어진 시기는 지증왕 2년(501)으로 추정됩니다. 

5. 6부 2 문장 다듬기 10번 문항

p.260: 중국 복건성의 건요에서 제작된 흑유완이다. 유약은 잔의 하부와 굽을 제외한 면에 흑유를 두껍게 입혔다. 잔 하부 근처에는 유약이 흘러내려 뭉친 현상이 확인된다. 오랜 기간 사용하여 구연부의 유악이 닳았으며 짙은 갈색을 뛴다.


문제 자체에 오타가 있다. '유악'은 '유약'으로, '뛴다'는 '띤다'로 고쳐야 한다.

아래는 책에서 제시한 모범 답안이다. 


p.263: 중국 푸젠성에 있는 가마터 젠야오에서 만든 검은 찻잔이다. 검은 잿물을 잔 아래쪽과 굽을 제외한 면에 두껍게 입혔는데, 잔 아래쪽 근처에는 잿물이 흘러내려 뭉친 자국이 있다. 오랫동안 써서 주둥이 부분은 잿물이 닳아 짙은 갈색을 띤다. 


결론부터 말하면, 위 모범 답안은 과도 교정으로 보인다. 한자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몰두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친 게 아닐까 싶다. 먼저, 건요建窯를 굳이 '젠야오'로 표기해야 하는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젠야오'라는 표기를 쓰고 있지 않다. 이 역시도 "외래어 표기법"의 기초가 된 "편수 자료"가 문제의 시작이다. 건요를 젠야오로 할 것이면 다른 가마(터)들 역시 '-야오' 식으로 통일해야 하는데, 다른 가마(터)들은 중국어 표기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균요均窯, 여요汝窯, 길주요吉州窯 등은 우리말샘에 모두 한국 한자음만 등록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연구자, 큐레이터는 한국 한자음으로 이를 읽고 쓰고 있다. 통일성을 생각한다면 젠야오보다는 건요로 통일해서 쓰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둘째, 유약=잿물인가? 이는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문화체육부 고시 제1996-13호)"가 원인이다. 현재 이 자료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찾을 수 없다. 국가기록원에만 남아 있다. 잿물이 유약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유약이 잿물인 것은 아니다. '잿물∈유약'이라는 것인데 유약釉藥이라는 한자어를 피하려다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고 만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례다. 그리고, 잿물이 유약인 경우는 흑유가 아니라 회유灰釉다. 


우리말을 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한자어를 피해서 될 것도 아니다. 


3, 5번은 정책적 문제까지 섞여 있다보니 해결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언제까지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박물관에서 많은 분들이 쉽고 정확한 관람을 위해 고민을 계속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문식성 교육과 공공언어학이 도울 수 있는 부분들도 보였고, 국어규범의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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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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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은 아래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어서 펴낸 것이다. 


三島由紀夫 · 東大全共闘. (1969). 討論 三島由紀夫 vs. 東大全共闘 ―美と共同体と東大闘争. 新潮社.

三島由紀夫 · 芥正彦 他. (2000). 三島由紀夫 vs. 東大全共闘 1969-2000. 藤原書店


三島由紀夫 · 東大全共闘(1969)가 1부로, 三島由紀夫 · 芥正彦 他(2000)가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1969년의 토론 현장 스크립트와 토론문이 담겼고, 2부는 2000년의 토론 스크립트와 토론문이 담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글에서 느껴지는 힘의 격차가 상당했다. 1부 안에서도 음성 언어 바탕의 토론 스크립트와 문자 언어 바탕의 토론문에 있어서 느낄 수 있는 차이가 있었다. 2부는 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굳이 읽어야 하나 싶어서 몇 파트만 읽다 말았다. 

2. 미시마 유키오... 문제적 인물이다. 전공투와의 토론 1년 뒤인 1970년 일본 육상자위대 건물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할복자살한 것으로도, 신 모 작가가 표절한 것으로도. 


2.1. 토론 초반 그는 현재 일본 사회에 만연한 '당면 질서 유지'를 비판한다. 당면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문제를 회피하거나 덮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는 천황제를 통한 일본의 혁명을 꿈꾸는 미시마나 당시 대학, 정부와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던 전공투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극과 극에 서 있는 이들이었지만 나름 공통 분모를 확립하려 한 것이다.    


​2.2. 그는 토론 내내 천황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 원래 천황제는 천황 개인의 퍼스낼러티에 의해 연속되어온 것이 아닙니다. 천황은 하나의 순수 지속이므로 천황의 개성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p.82).


일본에서의 유일한 혁명 원리는 천황 외에는 없다는 것(p.113)


그의 이러한 발언들을 종합하면 그가 목표로 하는 천황은 현실세계의 천황이 아니라 이데아계의 천황으로 보인다.


​2.3.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전공투C: 당신은 그래서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아닙니까?

미시마: 안 넘어서도 되지. 나는 일본인이고,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일본인으로 죽는다. 이걸로 족한 것이야. 그 한계를 나는 전혀 벗어나고 싶지 않아. 뭐 그래서 당신이 볼 때는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말이야. (p.79)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전공투와 일본인 그 자체이고 싶은 미시마. 그들의 입장차가 잘 보이는 곳이기도 하고, 그동안 미시마의 발언들이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잘 보여준다. 일본인이라는 한계에 만족하던 그는 한 해가 지난 뒤 거한 사고를 치게 되는데... 


3. 미시마와 전공투. 극과 극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당면 질서 유지' 등과 같이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천황이나 일본인이라는 한계 등에 대한 입장차도 극명했다. 다만, 토론에 있어서 그들은 모두 진지했다. 반대되는 입장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상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상대에 대한 비판에 귀닫고 사는 현재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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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 - 대당제국의 이국적 수입 문화
에드워드 H. 셰이퍼 지음, 이호영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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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당나라 시기 수입된 다양한 항목들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토리가 있다기보다는 백과사전식인 단편적 서술이 반복되는 식이다. 그럼에도 흥미를 끄는 소재들이 다수 있어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당나라 시대 중국인(정확히는 지배계층 한족)의 세계 인식이 어떠했는지까지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책의 절정은 책 끝의 ‘옮긴이의 말’이었다. 셰이퍼 교수의 험난한 원문을 그 의도를 해치지 않고 옮기기 위해 이호영 교수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노련하게 “장안의 봄”을 끌어들인다. 이시다의 “장안의 봄”이 이 책과 번역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읽을 책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장안의 봄”을 주문했다. 봄은 지났지만 장안의 봄날을 한번 잡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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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야기 이산의 책 20
린위탕 지음, 김정희 옮김 / 이산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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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시기 베이징의 모습에서 시작해서 베이징의 문화, 역사, 유적 등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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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아트 투어 - 프랑스부터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까지
박주영.김이재 지음 / 시원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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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고 내용도 좋은데 사진(도판) 화질이 아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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