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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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소재와 믿을 만한 출판사의 조합이라 나오자마자 거의 바로 샀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에 밀렸다. 거기다 '超細讀'으로 그림을 읽어내다보니 책 자체도 꼼꼼히 읽어야 했다. 그렇게 두어 달만에 오늘 겨우 끝을 냈다. 


그림 하나를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본 적이 잘 없다보니 평소 내가 작품들을 대충 보고 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깨달았다. 


읽으면서 비판적으로 접근한 부분이 있다. <청명상하도>의 행방 문제, 이식문화론의 실현으로서의 중국의 두 가지이다.


먼저, <청명상하도>의 행방 문제이다. 청, 만주국, 중화민국, 중화제국, 중화인민공화국 등등이 난립하던 시기에 그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선통제 푸이宣統帝 溥儀와 함께 있던 그림이라 실은 그 행방이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각 주체별로도 서술을 달리 하고 있어 혼란만 더 키우고 있다. 


일단, 톈위빈田玉彬은 중국공산당의 입장에 충실해 보인다.


청폐제淸廢帝 부의溥儀가 「청명상하도」를 훔쳐 몰래 출궁했고 창춘長春의 위만황궁에 보관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부의는 황급히 도주하면서 '청명상하도'가 민간에 흘러나갔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1950년 둥베이박물관에 소장됐고, 1953년부터 지금까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소장되고 있다(p.240).


하고많은 용어 가운데 굳이 '청폐제淸廢帝', '훔쳐' 등등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타임라인만 놓고 보면 바이두와 큰 흐름은 동일하다. 


마오주의에 조금 덜 물든 서술을 찾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찾았다. Keith Bradsher는 푸이가 소비에트군에 잡힐 때까지 <청명상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소비에트가 그림 보관을 위해 중국 동북부의 은행에 넘겼고, 1950년까지 은행에 있다가 인근의 박물관(동베이 박물관으로 추정)을 거쳐 후에 베이징의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서술하고 있다.  


위만황궁 박물관伪满皇宫博物院에서 진행된 <청명상하도> 강연에서도 강연자인 위훼이余辉 역시 민간으로 유출되었다는 표현은 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인민정부에서 동베이 박물관에 보관되다 고궁박물관으로 옮겼다고 서술하고 있다.  


Bradsher나 余辉의 서술을 볼 때 <청명상하도>가 단순히 민간으로 흘러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푸이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로 그림이 넘어가는 데 있어서 소비에트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번째 비판은 이식문화론이 실현된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것이다. 

톈위빈田玉彬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다정함은 전통적으로 중국인에게 내재된 감정적 특성이며 이는 유교 문화가 사회에 스며든 덕분이다(p.112).


... 개인적으로 현대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이전의 중국과는 단절된 다른 세계라 생각한다. 전통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마오주의라는 새로운 문화를 이식했고, 현대 중국은 그 위에 서 있는데, 그러한 상황을 정작 그들 자신은 모르는 듯 하다. 


그리고 저자는 언급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고려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청명상하도>에 등장한다. 그림이 끝나가는 지점인 조태승가趙太承家 앞에 갓을 쓰고 말을 타고 지나가는 고려사람이 있다. 책에서 얻은 의외의 수확은 개봉(開封, 당시 중고한어음을 재구하자면 *코이푱)의 고려인이 아닐까. 

(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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