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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평점 :


강렬한 핫핑크, 블랙이 대비를 이루는 책 표지와
소개 문구를 보면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심리 추적 미스터리 소설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내가 읽은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는
자극적인 사건을 품고 있지만,
마냥 무겁고 어둡지만은 않았고
읽으면서 느낀 감각은 의외로 잔잔하기까지 했다.
약 300쪽 분량이라 시간을 꽤 들여야 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다 읽는 데 세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중간에 지루하게 느껴지는 구간도 없었고,
남편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된다.
이 책은 주인공 정팡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정팡의 생활 속에서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정팡의 생각과 감정은
담담한 고백처럼 이어진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자기 세계에만 머무는 남편 밍런을 보며
주인공 정팡은 외도를 의심하지만,
밍런이 꺼낸 것은 뜻밖의 이혼 요구였다.
이후 그는 살인 사건에 연루되고,
정팡은 남편이 남긴 비밀의 흔적을 따라가게 된다.

정팡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밍런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서 결혼을 한 건 아니라는 걸.
다만 그가 감춘 비밀까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팡은 밍런에게 불만을 느끼면서도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삶을 잃을까 봐” 더 마음 졸였다고 말한다.
정팡이 붙잡고 있었던 것은 완벽한 사랑이라기보다,
그 관계가 만들어준 안정된 생활의 형태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 정팡의 버킷리스트였다.

얼핏 보면 자유를 되찾은 사람의 목록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창한 욕망이나 새로운 삶의 계획이라기보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를 묻는 목록에 가깝다.
자유로워진 사람이기보다, 안정된 생활에서 밀려나
잠시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정해진 삶의 구조가 사라졌을 때,
사람은 곧바로 자유를 누리기보다 먼저
그 공백 앞에서 망설임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 부분에 나도 공감했다.
강렬한 반전이나 날카로운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잘 읽히는 이유는 사건이 계속 몰아쳐서가 아니라,
작가가 정팡의 생활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저랬다” 설명하지 않고, 어렵게 꼬지 않는다.
대신 정팡의 하루, 습관, 선택, 머뭇거림을 차분히 보여준다.
아이들과 나누는 엉뚱한 대화,
수상한 상황을 농담처럼 받아치는 반응,
주변인들과 투닥거리듯 주고받는 말들 사이에서 뜻밖의 위트가 생긴다.
그래서 살인과 비밀이라는 무거운 소재가 있어도
이야기가 계속 암울하게 가라앉지는 않는다.
덕분에 독자는 정팡과 함께 의심하고, 흔들리고, 뒤늦게 알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그 방식 때문에 밍런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밍런의 비밀보다 내가 더 궁금했던 것은,
그 비밀이 그 안에서 어떻게 자라났는가였다.
그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솔직히 말하면 재밌게 읽었다.
쉬는 날 동생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건네주고 싶다.
나는 정팡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해서라기보다,
자신이 지켜온 생활의 무게를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으로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밀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보다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도 모른 척할 수 있을까?’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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