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빙화 카르페디엠 2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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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TV에서 방영해준 이 소설의 영화판을 보고 엄청 울었다.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울었다. 

그 후로 10년여가 흐른 지금 다시 <로빙화>를 보았는데 

내가 많이 커서인지, 세 번째로 봐서 그런지, 과연 눈물은 나오지 않았으나 

대신 그만큼 마음이 답답하고, 분통이 터졌다. 
 

예술가에게는 크게 두 가지 고뇌가 따르기 마련인가 보다. 

하나는 '작풍'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사상'에 대해서이다. 

주인공 아명의 그림은 '실제와 똑같지 않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무시당한다. 

틀에 맞춘 듯한, 정형화된 미술교육을 받은 부잣집 자제의 그림 앞에 

아명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은 기를 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과연 가능한한 실제와 똑같이 그린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변형시켜 그린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그래, 이 두 가치관이 싸우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아명네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권력 있는 이장 댁 아들의 그림을 대회에 출전시키려 드는 

부패한 어른들의 마음은 더욱 잘못되었다. 

왜 어린이들의 순수한 미술에까지 권력과 돈, 사상이 개입되어야 하는가? 

왜 재미있게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아이에게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강요하는가? 

 

그림은 재능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그림은 재능이 있다고 믿고 지속할 수 있는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그런데 많은 어른들이 초기에 이 자신감을 죽여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많은 아이들이 일찍 미술을 포기하고 만다. 

"실제와 똑같이 그려야만 한다면 사진을 찍지 왜 그림을 그리나요?" 

라는 <로빙화> 속 대사처럼... 

모든 작품의 독특한 가치는 인정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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