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20
채만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승재는 태수가 밉기는 하면서도 그의 하는 양이 어쩌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명랑한 것이 일변 귀염성스럽기도 했다. (중략) 초봉이를 뺏어가는 사람이니까 밉지만, 그러나 초봉이의 배필이 될 사람이니까 일변 귀엽던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아간 남자에 대한 감정이 물론 좋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의외로 그 감정의 성분은 ’증오’ 100%가 아닌가 보다.
채만식은 이 부분에서 연적을 마주한 남자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이 좋다.
실제로 어떤 감정이 100% 순수한 증오, 순수한 사랑인 경우는 드물다고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저 너머 ’둔뱀이’ 사는 초봉인데, 우리 어머니 아버지네 딸이고 계봉이네 언니고 형주 병주네 큰누나고 한 초봉인데, 어째서 초봉이가 이 집에 와서 이 사람하고 이럴꼬? ...암만해도 초봉이 저는 따로 있고, 시방 저는 남인 것만 같다.
--그래 그래 나는. ---정말 초봉이는 시방도 저 너머 ’둔뱀이’ 우리 집에 있다. 맨 먼저 일어나서 시방 몽당비짜락으로 토방을 쓴다.
 
   

원래 살던 집을 떠나 남편과 신혼살림을 차리게 된 초봉이.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모습에 생경함을 느낀다.  
결혼 전의 자신과 결혼 후 자신이 너무나 달라서.  
마치 내가 초봉이가 된 양 감정이입하여 읽게 된 부분이다.

   
  "응.... 그래, 느이 아버지를 잡아 가지 말려구, 그럴려구 순사가 될 터란 말이엇다?"
"네애"
"그럼 남의 쌀을 몰래 갖다 먹은 아버지는 그랬어두 아버진 착한 아버지란 말이지?"
"아뇨"
"그럼 나쁜 아??으라구, 그래서 그랬는데."
"그러니깐 난 아버지 붙잡아 안 가요."
승재는 슬픈 동화를 읽는 것 같아 눈갓이 매워 오고, 목이 메어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요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으면서 ’정말 캐릭터가 실제 있는 듯 생생하다!!’고 느꼈는데,
지금 <탁류>의 리뷰를 쓰면서 책을 다시 보니,
채만식은 디킨스만큼이나 개성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탁류>도 그렇고, <태평천하>도 그렇고... 책을 덮고 나서도 선연하게 떠오르는 그 캐릭터들!!!
새삼 채만식처럼 놀라운 작가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졌다.

그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매력있다고 느꼈던 캐릭터는?
난 태수와 계봉이가 맘에 들었다. 태수는 어느쪽이라고 말하면 악역이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따돌림당한 형보와 놀아주었으므로, 착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사생활은 좀 더러울지 몰라도, 초봉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인 것 같았으니.
(위에 옮겨 놓은 글, 승재가 태수에 대해 100% 증오의 감정을 품을 수 없었다던 부분. 
내가 태수를 미워할 수 없었던 건 바로 저 표현이 너무 아름다워서이다~!!)
계봉이는, 초봉이가 워낙 답답한 성격이다 보니...
계봉이같이 조리있게 까불대기 잘 하는 여자가 멋있어 보였다.
계봉이마저 없었다면 이 소설, 정말 초봉이가 당하는 모습이 불쌍하고 억울해서 어찌 다 봤을꼬!!


민족의 아픔과 가난, 그 속에서 극도로 비참해지는 주인공...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조그마한 희망이 있다. 
많은 경우, 아무리 험난한 이야기라도 희망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건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탁류>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인물들이 구체적이고 생생할수록 독자가 느끼는 고통도 생생해지고,
그럴수록 인물들이 가진 인간미도 강렬하게 와닿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책, 그것이 <탁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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