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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루기
이상교 지음, 이형진 그림 / 책모종 / 2026년 9월
평점 :
얼루기는 갈색과 고동색 털이 섞인 길고양이입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조금 다른 짧은 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소년에게도 처음부터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멀찍이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거리를 둡니다.
'얼루기'는 이상교 시인의 동시집 '찰방찰방 밤을 건너' (문학동네, 2019)에 실린 동시 '덜룩이'를 원작으로 한 그림책입니다.
짧은 동시 한 편이 그림을 만나 고양이와 소년의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내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혼자 걷는 시간이 많은 소년과 얼루기는 공원에서 마주치는 날이 늘어나면서 가까워집니다.
낙엽 밟는 소리를 함께 듣고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기도 합니다.
둘이 친해지는 과정에는 특별한 사건도, 거창한 대화도 없습니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 갑니다.
얼루기의 조심스러운 모습과 소년의 차분한 태도를 살펴보면 친해지는 데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읽는다면 처음 만났을 때와 시간이 흐른 뒤 얼루기와 소년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두 존재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도 함께 이야기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얼루기'는 그림을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글동글한 얼루기는 표정과 몸짓까지 귀엽고, 소년과 함께 있는 모습도 사랑스럽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얼루기가 어디에 있는지 먼저 찾아보게 됩니다.
공원의 풍경은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을 지나 다시 봄으로 이어집니다.
비 내리는 날의 풍경과 알록달록한 낙엽, 차가운 겨울빛, 싱그러운 봄의 초록까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이 얼루기와 소년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산책길, 놀이터 익숙한 공원의 풍경이 따뜻하게 펼쳐져 두 주인공을 따라 산책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읽을 때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찾아보거나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을 살펴보는 것도 책에 재미를 더 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는 함께입니다.
얼루기는 짧은 꼬리를 가진 고양이지만, 소년은 그런 얼루기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얼루기는 얼루기대로, 소년은 소년대로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얼루기가 소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장면에서는 두 존재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소년은 몸집이 커서 얼루기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서로 마음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모든 차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함께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간다면 함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는 '나와 다른 친구와 즐겁게 지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나눠 보기도 좋습니다.
귀여운 고양이와 소년의 이야기 덕분에 함께한다는 것이 꼭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멀리할 필요도, 꼭 나와 같아져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짧은 꼬리를 가진 얼루기와 소년, 모두가 같은 모습일 수는 없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함께할 방법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그림과 제목이 귀여워서 펼쳤다가 함께 살아가는 마음까지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림책 '얼루기'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누기 좋은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