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대한 앙케트
세스지 지음, 오삭 옮김 / 반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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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 아닐까?


64페이지, 정말 손바닥만 한 책인데 이 책이 남긴 불안과 여운은 어지간한 장편보다 훨씬 깊었다.


줄거리는 심플하다. 대학생 네 명(남자 둘, 여자 둘)이 한밤중에 공동묘지에서 담력 시험을 한다. 문제는 그날 이후 한 친구가 ‘저주받은 나무’ 아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남은 친구들이 경찰과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같은 상황을 겪었으면서도 기억하는 게 다 미묘하게 달라 혼란이 커진다.


이 책은 흔한 공포소설과는 다르다. 귀신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잔인한 장면으로 놀래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입’이 가진 힘, 그리고 그로 인해 왜곡되는 기억을 파고든다. 사람은 자기 입맛대로 진실을 편집하고, 쉽게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그 말이 힘을 갖고, 결국은 저주가 되는 과정이 무섭도록 현실적이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문장이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은 건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면서, 그게 지장보살의 형태로 바뀌는 순간 떠받들면서 머리를 조아리니까요. 인간이 자기 맘대로 의미를 부여해서 선하다니 약하다니 결정짓는 거죠. 그런 식으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이 잘못된 힘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요.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저주겠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격이랄까요. 정말 입이란 재앙의 근원이네요." (p.44)


말의 힘과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본능, 그리고 진실의 허무함까지 담고 있어서, 읽고 나면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심리적 공포를 좋아하거나,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소설을 찾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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