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세기 후반 영국의 대표적 문예비평가이자 사회주의 이론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의 Keyword: A Vocabulary of Culture and Society(1976, 1983)를 옮긴 책이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저명한 문예비평가의 사회과학 용어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책의 범주를 요즘 유행하는 용어사전으로만 한정할 순 없다. 저자 개인의 지적 편린이 뭍어나는 사전류로 치부하기에, 영국 사회주의 전통을 기반으로 20세기 전후반에 걸친 개념형성사를 집대성한 이 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에 대한 이러한 편애에 가까운 마음을 길게 설명하기보다 아래의 문제를 한번 풀어봄으로써 그 차이를 분명히 해보고자 한다.

다음의 ‘이것’이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 “이것은 ‘보존력 있는’이라는 일반적 의미에서 14세기부터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정치적인 용례로 사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830년에 크로커의 ‘소위 토리당이라 불리지만 보수당이란 말이 더 적합한 정당’이라는 용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이 책, 371면)

다들 어렵지 않게 ‘conservative’가 정답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 하나를 더 풀어보자. “지금도 이것은 단순히 ‘conservative'의 반대어로, 즉 변화를 지지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가장 일반적인 개량이라는 의미에서, 거의 모든 당파가 자신의 제안들에 이 형용사를 갖다붙인다. 예를 들어 ’진보적이지만 사회주의적이지는 않은 정당‘이라든지 ’보수주의는 질서있는 진보를 말한다. 우리야말로 진짜 진보적인 당이다‘라는 용례가 있다.”(이 책, 373~74면)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progressive’다. 이 두개의 개념 해설에서 개념사가로서의 전문성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 오히려 레이먼드 윌리엄즈가 “일반적이고 다양하며 모호한 의미를 띤” 일상어들을 주로 다루고자 하는 독특한 학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지향하는 개념사의 방향은 무엇일까. 다음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단어마다 그 어원상 의미는 모두 흥미롭다. 그런데 많은 경우 더 흥미로운 것은 종종 이후의 의미변화다. 통속적인 오용과 관련해 신문에 등장하는 불평들이란 대개 최근에 그 의미가 변화된 단어들을 향하고 있다. (…) 어휘는 배워야 할 ‘전통’이 아닐뿐더러 당연히 수락해야 할 ‘공통이해’도 아니며, ‘우리의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한 권위를 갖는 일련의 의미도 아니다.”(이 책, 30~36면)

즉 레이먼드 윌리엄즈에게 개념사란 시대의 변화를 바로 파악하여 시시각각 변화해가는 학문이다. 저 위의 문제들에서 각 용어들의 초기 어원이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현재 그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저명한 문예비평가였던 그가 어떤 이유로 개념사에 발을 담그게 되었을까. (실제로 이 책은 애초에 그의 『문화와 사회』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를 해설하는 부록의 차원에서 집필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선별한 키워드가 “자본주의 사회의 헤게모니 관철을 위한 문화적 도구임을 간파”(나인호 『개념사란 무엇인가』, 역사비평사 2011)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개념사는 결국 정치를 지향하는 연구의 일환이며 자신의 문화연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언어는 이처럼 그 뿌리가 중요하지 않은 덕분에 매일매일 새롭게 그 의미를 형성해간다. (정작 그래도 되는지는 언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인터넷을 들여다 보면 볼수록 어휘는 매일 아침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게 틀림없다.) 이 책의 서문의 한 구절은 그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그것(어휘)은 사용되기 위한 어휘이며 우리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어휘인 동시에 우리가 각자의 언어와 역사를 구축해갈 때 바뀌어야 한다고 여길 경우 바꿔야 하는 어휘인 것이다.”(이 책,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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