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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를 초대하는 방법 - 기후위기 시대, 인간과 자연을 잇는 도시 건축 이야기
남상문 지음 / 현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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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새를 초대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마당이나 테라스에 작은 수반을 놓고 물을 채운 후 기다리면 된다. 그게 전부다. 깨끗한 물이 있으면 생명은 어디나 찾아온다.”


한줄평 : 바이오필리아적 관점에서 다시 쓴 건축사

도시를 떠나 (결국 읍으로 이사왔지만) 시골에 와서 살며 느낀 점은 도시적 삶이 인간의 생리에 결코 잘 맞는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서울에서 알게 되었다가 지방 소도시로 이사하여 사는 친구를 몇 만나보면, 그들의 낯빛이 훨씬 건강해지고 편안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문제는 밀도였을까, 아니면 삶의 방식이었을까.

그런데 재밌는 점은 서울에서 보지 못한 풍경과 생물들을 이곳 남해에서 훨씬 많이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가을에는 반딧불이가 날고, 계절과 무관하게 밤 하늘 가득 별이 뜬다. 마을하천에는 수달이 돌아다니고, 뒷산에는 오소리가 뛰어논다. 마을마다 자주 오는 왜가리 무리가 있다. 여름 밤 내내 풀벌레와 개구리들의 합창이 이어진다.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모기는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그 많은 청개구리들이 잡아먹어서 그렇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청개구리들은 논에다 알을 까고 모기 유충을 잡아먹는다. 떄문에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날씨는 의외로 물이 없는 모내기 전 초여름과 벼를 수확하고 난 후의 초가을이다.

이 책의 서문에 있는 저 위의 문장을 나는 깊이 공감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저자의 ‘수공간’ 개념이 너무나도 도시적인 것이라 흥미로웠다. 시골에서의 수공간이란 건물 앞 수돗가의 바가지, 너른 논에 대놓은 물이다. 관리의 대상이 아닌 생활의 일부다. 이걸 도시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르 코르뷔지에와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비판하는 내용이 실린 책은 좀더 재미있게 읽게 된다. <더 인간적인 건축>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거기선 그 둘의 건물이 재미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면 여기서는 규모와 밀도와 기능만을 고려했다며 비판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오늘날 기후 위기는 이렇듯 “자연을 포함한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기술, 효율, 편의, 유행, 이윤 등을 추구해온 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석사 과정 때 농촌다움의 4Cs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glp_yonghoon ). 바로 보존(conversation), 경작/재배(cultivation), 공동체(community), 창의성(creativity)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기후위기나 커뮤니티에 대해 쓴 책에 이러한 개념이 계속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도 공간과 장소의 개념과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른 커뮤니티에 대해 말한다. 재밌는 부분은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최후의 의인이 10인인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는 파트였다. 10인은 당시 한 가족,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최소 단위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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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택 -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야마모토 리켄.나카 도시하루 지음, 이정환 옮김, 박창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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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야마모토 리켄 하면 우리에게 ‘유리창으로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거실’을 만든 건축가로 익숙할 것이다. 바로 강남 세곡동 보금자리 주택 이야기다. 듣기로는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그렇게 디자인했다고 한다. 과연, 거실이 투명하면 이웃과 소통하게 되나? 옆 사람이 내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아도 불쾌한 시대에 말이다. 그것이 나에게 즉각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탈 주택>은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어찌보면 건축가의 친절한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자. 이 건축가의 공간은 침실(가장 사적인 영역)-거실(사적인 영역 안에 있는 공적인 영역)-커먼데크(공적인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 침실이 사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건축가도, 우리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거실이다. 거실은 곧 응접실이고,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를 이어주는 공간이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외부에 개방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여겼다.

그에게 기존의 아파트 공간은 ‘밀실주택’으로 여겨진다. 밀실주택은 곧 노동자 주택이다. 즉, 임금노동자를 위한 노동력 재생산(성행위)를 위한 주택으로,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개성 없는 시급노동자를 위한 장소다. 즉, 균일한 제품의 생산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집이다. 이러한 ‘1가구 1주택’은 1947년 니시야마 우조가 주장한 식침분리(먹는 공간과 자는 공간의 분리), 취침분리(자녀 방과 부부 방의 분리)에 근거하여 디자인되었으며, 현대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해서 생산되어왔다.

문제는 이러한 ‘밀실주택’에서는 지역사회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사회권이라는 것은 마치야(우리나라로 따지면 상가주택 거리)에서 발생하는데, 마치야는 거리를 향한 가게와 가게 뒷편에 있는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나라 옛 구멍가게들이 그러하듯이. 이곳 가게가 바로 ’시키이‘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은 거리의 번영을 위해 함께 자주적으로 마을을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 장사를 해나간다. ”주택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경제활동에도 참여한다는 구조를 갖추지 않는 한 커뮤니티는 성립될 수 없다.“ 즉, 경제적으로 함께 엮이지 않는 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 다시 강남 세곡동 보금자리 주택으로 돌아가보자. 건축가는 이 주택을 단순히 임금노동자의 주택으로 보지 않고, 거실이 공방이나 가게나 기타 여러가지 다채로운 (경제)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거실은 공공공간에 면하여 활짝 열릴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밀실주택‘을 원한 보통의 사람들이었기에, 거실 또한 사적인 영역이 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유리문마다 블라인드로 가리게 된 것이다.

서울에 살았을 때에는 나 또한 당연히 거실을 가리는 사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무리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기꺼운 사람이라 하여도,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아파트 단지에 여자만 사는 공간을 보란듯이 열어두는 것은 자해에 가까운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남해군의 시골마을로 온 이후의 나는 어떤가.

남해는 관광업이 가장 큰 수입원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남해군민 모두가 야마모토 리켄이 말하는 ’지역사회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남해에 오는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가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될테니까. 그러나 남해는 꽤나 넓은 섬이라(제주-거제-진도-남해 순으로 크다) 차로 10~15분 거리에 있는 마을끼리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남해의 청년 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구들끼리 공식/비공식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주택은 당연히 도시에서의 주택과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을 내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 대문을 닫고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 어느 집이든 거실이 길가에서 조금이라도 들여다보이게끔 되어 있다. 저녁 즈음 마을을 산책하면 불빛으로 어느 댁에 누가 귀가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모든 집의 거실이 ‘시키이’가 되는 셈이다.

나 또한 주거 공간은 원룸 형태로 되어 있어 온전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사무실로 쓰는 공간은 팜프라촌의 라운지다. 팜프라촌 투숙객들이 오기도 하고, 이웃 주민들이 오기도 하고, 지나가던 친구들이 들르기도 한다. 요새는 일 주일에 한두 번씩 옆 마을 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는 닉이 빵을 사들고 찾아와 영어와 한국어로 수다를 떨다가 간다. 때로는 라운지 앞에서 밭일하는 이장님과 주민 분들께 커피 한 잔 내어드리는 공간이 된다. 두모마을 청년들의 ‘시키이’다.

야마모토 리켄이 생각한 이상적인 커뮤니티 주거는 이미 남해에 만들어져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과거의 농경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커뮤니티를 현대인들을 위해 재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탈 주택>의 부제는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이다. 사실 이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일 것이다. 공동체가 이루어진 곳에서는 자연스레 건축도 공동체를 향하도록 만들어진다. 훌륭한 건축가가 없더라도 이미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공동체가 없는 곳에 공동체를 위한 건축을 만든다면 그것은 잘 작동할 것인가? 경제활동을 함께하지 않는 임금노동자들 사이에 커뮤니티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야할까? 책을 반절 정도 읽은 지금에는 아직 이 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책장을 다 덮은 후에는 어렴풋하게라도 알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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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 새로운 맛으로 자신의 멋을 만든 여성들
김나영.이은솔 지음, 조희숙 외 대담 / 북스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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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에는 눈 앞의 길이 선명하게 보이다가도, 갑자기 새벽의 자유로처럼 뿌옇게 안개가 껴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날들이 있다. 남들이 파놓은 우물을 따라 내려가면 좁고 쉽고 안전한데, 나는 그저 커다란 땅을 여기저기 파고만 있는 기분이다. 남이 잘해놓은 작품을 보다가 내가 해놓은 작품을 보고는 아이고, 소중하고 못생긴 내 감자, 하고 가여워하다가 그래도 내가 아니면 누가 이 감자를 계속 들여다봐주겠나 싶은 것이다. 그래도 답답하면 들고 있던 삽을 잠시 내팽겨쳐놓고 바닥에 드러누웠다가, 잠시 남이 훌륭하게 파놓은 자리를 들여다본다. 아, 내가 파던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구나.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큰 그릇을 파느라 채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요리가 전부는 아니지만>을 읽다보면 훌륭해보이는 다른 사람의 길도 처음부터 또렷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계속 정진하여 결국은 자신만의 분야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감자가 유난히 쪼글쪼글해보이는 날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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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감상
김지연 지음 / 선드리프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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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에 해묵은 우울에 가을타는 마음까지 더해져 유달리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티끌만한 안개도 없이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살았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새 한동안 책 한 권을 끝내지 못해 반만 읽은 책들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새벽에 일어난 김에 붙잡은 책을 끝까지 읽었다. 김지연 작가의 책 <보통의 감상>이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지친 하루가 끝나고 포근한 이불에 감싸져 도닥여지는 감각이 든다.

p 28
“탁본을 뜨려면 우선 대상의 먼지를 깨끗이 털어야 한다. 작가는 먼지를 털고 대상을 만지면서 그 장소를 보살피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잊혔단 시간 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서 가만히 어루만지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것의 형상을 종이에 뜬다. 사진보다 더 적극적인 이 행위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바깥으로 드러내며, 자세히 바라보고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애정 어린 손길이다.”

p 56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상대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에게 예의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 것 같더라도 속단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이다.”
“결국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아픔을 그대로 짊어진 채 불쑥 꺼지는 가슴의 구멍을 그때그때 적당히 메우며 살아간다.”

p 58
“일상의 사소한 고민은 누구나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의 상처는 밖으로 드러내기가 어렵다. 우리는 물 속에서 숨을 참듯이 매번 아픔을 가슴속에 꾹 눌러 담고 참는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밖으로 꺼내면, 곧장 둑이 무너져 내리고 깊은 곳에서부터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수면 위로 올라와 참았던 숨을 내뱉듯이 상처를 드러내고 소리 내어 말하길 반복하면, 어느새 아픔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순간이 온다. 바느질이 치유를 상징한다면, 바늘로 구멍을 뚫는 행위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도록 가슴에 숨구멍을 트는 것이다.”

p 68
“상처와 치유에 묘안은 없다. 사람을 치유로 이끄는 것은 아주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감각이다. (…) 치유는 어느 날 벼락같은 행운으로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물들이며 아주 천천히 찾아온다. 겨울에서 봄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계절의 감각처럼 말이다.”

p 124
“아픈 사람은 일반적인 사회의 시간과 다른 차원에 산다. 몸이 고장났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건만, 사람들은 자꾸 아픈 사람을 잊는다. 우리 사회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에 근원적 공포를 가진 듯, 모두에게 외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상태’를 요구한다. 혹은 ‘정상’처럼 행동하길 강요한다. 아픔을 증명해야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나마 배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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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은어
서한나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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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천천히 읽어나가는 산문집은 오랜만이다. 마음에 콕 박히는 구절이 있으면 옆에 앉은 룸메이트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노래를 틀어놓고 한 꼭지 두 꼭지 읽다 보면 마음이 촉촉해진다. 한권 더 사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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